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법문

아름다운 절제

가람지기 | 2007.03.29 10:37 | 조회 1785

이 산중에 방부 들이고 운문인이 된 신입생 학인 스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새 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소임들과 새 교과목을 봄철이라는 절기와 함께 다시 시작한 재학생 스님들에게도 격려를 보냅니다.

생각해보면 이 어려운 시대에 일불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입니다. 이제부터야말로 나는 왜 출가를 하였는지, 지금 출가 수행자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그래서 행복한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학인 시절에는 물론 이론적인 것도 갖추고, 도량을 수호하는 그 의미까지도 함께 배워야 합니다. 隨處作主하면 立處皆眞이라.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주인이 되어 제대로 잘 살 때만이 그곳이 다 열린 마음의 도량이 된다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탄력있는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자유롭고, 매사에 진실된(卽事而眞) 수행자로 살아가는 일상은 그 첫째가 참회하는 생활입니다. 懺悔를 <육조단경>에서는 "영원히 번뇌 망념을 짓지 않고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懺은 '자기의 행위를 반성하는 것'이고, 悔는 '다시는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회란 철저한 '자기 성찰'이며 새로운 '자기원력'인 것입니다.

나는 학인스님들이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행하고 있는 조석예불의식이 바로 참회 수행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새벽예불 후의 108대참회와 방학 때마다 그리고 사집과목을 마치고 반드시 하고 있는 <자비도량참법>기도는 이미 학인스님들의 오랜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일상처럼 행해지는 의식들이라서 특별히 참회하는 수행이라고 강조되지 않았을 뿐, 사실은 조석으로 모시는 예불, 특히 새벽 예불 후 108참회의 시간은 하루 생활의 에너지를 가장 확실하게 축적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 삶의 두 번째가 회향하는 생활입니다. 이 다음에 더 잘하고, 그런 뒤에 회향한다는 생각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출가 수행자에게 이 다음 더 잘 할 때란 없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긴 일생을 살고 가는 하루살이처럼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 할 때 수행자는 아름답게 절제되고 자유롭게 피어날 것입니다.

봄은 저마다 가꾼 속 뜰이 환하게 열려지는 계절입니다. 봄에 피는 작은 한 송이의 꽃이 어찌 하루아침에 단박 그렇게 피겠습니까? 봄이 왔어도 제 모습을 피워내지 못하는 꽃도 있습니다.

올해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꽃들은 매우 특별한 꽃입니다. 유래 없이 많이 쌓였던 호거산의 눈이며, 살을 에이듯 차가웠던 시련을 지낸 꽃만이 온 산천에 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인으로 머물러 있는 동안 평생 수행자로서 받아 쓸 수 있는 기량을 닦아야 합니다. 그것은 철저한 자기 성찰과 원력의 참회 수행으로 아름답게 절제될 때 아름답게 회향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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