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운문 소식

졸업성지순례-아잔타

가람지기 | 2008.10.23 17:31 | 조회 5097

인도 데칸고원을 적시며 흐르는 와고라(江)이 만곡을 이루며 지나는 암벽의 계곡에는 인근의 엘로라 석굴과 쌍벽을 다투는 아잔타 석굴이 자리하고 있다. 엘로라 석굴보다 조금 앞선 기원전 2세기부터 개굴을 시작하여 기원후 7세기경에 개굴을 마친 이 석굴은 엘로라 석굴과는 달리 오직 불교만을 신봉하는 종교시설물로 개굴된 곳이다.

아잔타의 규모는 명성에 걸맞게 총 29개의 석굴이 높이 70여m의 산비탈 암벽에 촘촘히 들어서 있다. 길이만도 장장 1.5km에 달하는 석굴의 규모도 대단하지만 이 곳의 벽화와 조각들은 찬란했던 고대 인도 불교예술의 걸작품들로 평가된다.

아잔타의 불교유적은 발견 때부터 일찍히 불교예술의 보고(寶庫)로 세계가 인정하는 곳으로, 이 곳에 새겨지고 그려진 불교 미술품들은 불교의 전파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고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그 미술양식이 우리에게 전해질 정도였다. 유네스코에 의해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석굴이 최초로 개굴이 시작될 때는 지금 볼 수 있는 불상은 조각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부파불교(部派佛敎)가 성했기 때문에 승려가 거주하는 공간인 승원(僧院)과 불탑이 있는 불당만이 세워졌다. 기원후 5-6세기, 굽타시대를 맞아 아잔타는 더 대대적으로 석굴조성이 가장 활발해지고 불상예배를 행하는 대승불교가 당시 신봉된 탓에 굽타양식의 커다란 불상들이 많이 조각되어 중앙에 안치되었고 벽면에도 새겨지게 된다.

아잔타를 얘기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석굴벽면과 천정에 그려진 화려한 채색그림들이다. 석가의 일생 등 불전(佛傳) 등을 주제로 하는 그림들로, 일부 훼손 되기는 했지만 오랜 기간 고립되어 있었던 탓에 본래의 색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예술성 짙은 인도회화의 걸작들이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유산인 아잔타 석굴도 한동안 역사속에서 사라진 존재였다. 기원후 7세기 말 들어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아잔타는 황폐화 되었고 이내 밀림으로 뒤덮어 버려 천 년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긴 잠을 자게 된다.

때는 1819년,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병사 존 스미스 일행이 호랑이 사냥을 하던 중 이 곳을 우연히 발견하여 인도 불교건축과 미술, 그리고 불교사 연구에 있어 세기적 자료인 아잔타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규모면에서 아잔타 석굴은 엘로나 석굴보다 작은 편이다. 그러나 석굴에 정교하게 새겨진 건축물과 조각들은 그 예술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으며 특히 벽과 천정, 그리고 기둥에 생동감 있게 그려진 그림들은 아잔타만의 자랑거리다.

참조: 다음 블로그 호시탐탕




unnews_1224750712_72.jpg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