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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성지순례- 산치대탑

가람지기 | 2008.10.24 13:34 | 조회 6559

산치대탑은 인도의 중앙 마드야 프라데쉬(Madhya Pradesh) 주에 속해 있으며, 주의 수도 보팔(Bhopal)에서 열차로 약 44km, 도로로는 약 68km의 거리에 위치한 산치(Sanchi)에는 현재 아쇼카 대왕에 의해 건립된 스투파 및 수십 개에 달하는 사원과 승원터가 남아있어, 불교 미술ㆍ문화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이곳 스투파의 건립에 대해서는 아쇼카왕의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젊은 시절 웃자인(Ujjain)의 태수로 재직할 당시 아쇼카 왕은 현재의 산치에서 약 12km 북서쪽에 위치한

비디샤(Vidisha, 혹은 Besnagar) 지방의 데비(Devi)라 불리우는 한 처녀를 사랑하였는데, 왕이 되어 결혼할 것을 약속한 아쇼카는 이후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아쇼카는 왕위에 오르고도 인도 통일을 위한 전쟁에 몰두한 나머지 지난날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던 사이 여인 데비(Devi)는 마헨드라(Mahendra)라는 아들과 상가미타(Sanghamitta)라 불리우는 딸을 낳았고, 인도의 통일전쟁이 끝나갈 무렵 자기가 지니고 있던 신표를 아들에게 주어 아버지 아쇼카왕을 만나라고 이야기한다.

이윽고 자신의 아들을 만나 지난날의 약속을 생각하게 된 아쇼카 왕은 아들과 함께 전날 사랑하던 여인을 찾았으나 그 여인은 이미 죽었고, 이에 아들의 소원대로 어머니의 유해 위에 불사리를 모신 스투파를 건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치 스투파에 대한 위의 이야기의 사실성 여부는 어찌되었건 이후 아쇼카 왕의 아들 마헨드라(Mahendra)는 승려가 되었고,

이곳 산치에 건립된 승원에 한동안 머무른 후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떠났다고 한다.

이와같은 포교사실에 대해서는 또다른 문헌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기도 하다.

곧 84,000개의 스투파를 건립하고 난 후 아쇼카 대왕은 파탈리푸트라(Pataliputra, Patna)에서 정법수호를 위한 제3차 경전결집을 마치자 이내 북서인도의 캐시미르 및 간다라 지방과 마히샤릿타, 바나바사, 아파란타카, 마하랏타, 스반나부미, 스리랑카 등 9개 지방에 포교사를 파견하게 되는데,

그때 스리랑카에 파견된 사람으로는 ‘마헨드라 및 4명’이란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다.

또 이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스리랑카에서도 B.C. 250~210년 경 데바낭피야 팃사(Devanampiya Tissa) 왕의 통치 기간 중 마헨드라 장로에 의해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되었음을 인정하고 있는 한편,

현재 스리랑카의 마힌타레 산에는 마헨드라 장로가 머물었다는 동굴과 마헨드라 장로의 여동생 상가미타가 보드가야에서 옮겨 왔다고 하는 보리수 나무가 아누라디푸라(Anuradhapura)라 불리우는 지방에 현존해 있기도 하다.

이상의 기록들을 견주어 생각해 볼 때 아쇼카 왕의 치세기간 중 이곳 산치는 남방 대외 불교 포교의 거점이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곳에는 또한 거대한 규모의 상가(Sangha)가 형성되어 있었음 역시 추축해 볼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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