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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광장] 다시 생각하는 생명의 달 4월

가람지기 | 2008.04.06 13:45 | 조회 4339

[3040광장] 다시 생각하는 생명의 달 4월


누가 봄날을 가리켜 잔인하기까지 하다고 말하던가? 매화향이 가득한 봄날들이 정말 잔인해서일까? 아마도 잔인하게 표현되고 있는 인간의 그 행위들 때문일 수 있다. 이번 봄날들은 유독히 우울하고 무겁다.

다른 생명체도 나의 몸과 다르지 않다는 자비심을 말하는 同體大悲(동체대비)를 잊은 것도 아니련만 진심으로 만물을 나와 같은 한몸으로 대하지 않았음을 이제라도 참회하며 기도한다. 한방울의 물일지라도 마음의 눈으로 보면 그 속에는 무수한 생명이 깃들어 산다. 이 진리를 날마다 읊으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았음을 지금에야 참회한다.


생명의 질서는 나만을 위한 하나의 길만 보여주지 않는다. 살아가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 큰 길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어지면 이것도 없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너와 내'가, '자연과 인간'이 같은 근원이라는 자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복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살고 있는 생명을 잘 살도록 돕는 일이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은 好生惡死(호생오사), 즉 한결같이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때문에 그것이 인간이건 동물이건 미물이건 간에 살고 싶어하는 것을 잘 살도록 도와주면 감사하고 행복해한다.


그러나 반대로 애써 살려고 하는 생명들을 외면하고 그들이 지닌 삶의 터전을 파괴했을 때는 괴로워하여 원망을 남기며 죽어간다. 그것이 어찌 복이 되겠는가. 결국 복을 많이 받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자세가 더 중요한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인 남편에게 맞아 죽은 열아홉살 베트남 신부 이야기, 안양의 어린 초등학생 살해사건, 세 모녀를 살해한 일 등등의 소식들은 우리들을 더없이 당황하게 한다. 하여, 이 모든 일들에 대하여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저 죄송스럽고 미안할 뿐이다.


우리들의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와 버렸을까? 답답한 일이다.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보릿고개의 빈곤 속에서도 먼저 이웃의 안위가 최고의 관심사였고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염려와 온정의 전통을 남겼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산에 있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라도 함부로 꺾으면 산신령님이 怒(노)하시고 물 한방울도 함부로 낭비하면 용왕님이 벌주신다고 타이르시곤 했다. 물에 대한 감사의 행위가 용왕께 기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것을 다만 비지성적인 모습이라고 몰아붙이는 데만 익숙하다.


올해의 4월은 부디 지난날들과 달라지기를 기도할 뿐이다. 지금이라도 지난날 특히 사람들의 생명을 그토록 함부로 희생시킨 일들에 죄의식을 느끼고 내가 지닌 온정의 마음을 ‘너’를 향한 창으로 열어두었으면 한다. 동시에 만물은 그것이 有情(유정)이든 無情(무정)이든 저마다 제 생명을 살려내는 신비한 움직임이 있음을 알고 진지하게 그 존귀한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주문한다.


물론 오늘날의 우리들 사회를 비극의 상처로 얼룩지게 하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힘의 작용도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현상은 어떤 신의 힘이나 우발적 현상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생명관, 인생관, 가치관에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거듭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그릇된 생명관, 가치관에 의하여 엄청난 비극이 초래된다. 특히 배타적이며 오직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은 모든 생명이 동일하게 소중한 것임을 깨닫기보다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행동에 빠지게 한다.


4월에 피어나는 작은 꽃 한포기에도 우주적 생명질서인 同體(동체)평등의 원리가 담겨 있다. 우리들의 우주는 인간 중심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가 우리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생명경시로 연결될 수 있어 위험하다.


4월의 대자연은 모든 생명체들의 공동 소유지이며 자람터이다. 혹여라도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여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자만은 금물이다. 우리 모두는 생명체라는 근원을 나누어 지닌 자연속에서의 동족이다. 모든 생명체는 나와 함께 호흡을 주고받는 공존의 관계에 있다. 이를 잊지 않는다면 꽃향기 가득한 4월의 나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진 스님 운문사 승가대학 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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