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발자취는 재부(財富)이다 - 치문반 우연

최고관리자 | 2016.11.14 14:47 | 조회 328

발자취는 재부(財富)이다.

 

안녕하십니까? <발자취도 재부이다> 발자취도 재부 즉 풍요로운 재산이다 라는 주제로 오늘 차례법문을 준비한 치문반 우연입니다.

 

발자취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발자취는 바로 걷는 사람이 남기는 깊거나 옅거나 하는 흔적이다.라고 한다면 아마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발자취는 財富이다.라고 한다면 일부 사람들은 의심을 품을 것입니다. 저는 발자취는 바로 일종 재부이다라고 세상에 알려주고 싶습니다.

발자취는 선행자가 남겨놓은 재부입니다

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남기는 발자취는

隨作後人程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서산대사께서 후학들에게 남긴 경훈입니다, 우리의 앞에는 선행자가 남겨놓은 발자취가 수두룩합니다. 깊은 발자취도 있고 옅은 발자취도 있으며 가벼운 것도, 무거운 것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발자취를 세심하게 살피고 걷는다면 걸음이 보다 가벼워질 수도 있고 굽은 길을 걷지 않을 수 있으며 이상의 대안에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종대왕이란 문학 선행자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았더라면 아름답고 순수한 우리 민족문자의 탄생으로 어찌 모국어의 존함을 세울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단테, 다빈치 등 문예 선행자들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았더라면 어찌 문예부흥의 물결이 중세기 신학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에디슨, 파라데이 등 과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았더라면 어찌 전기화 시대에 들어서고 휘황찬란한 문명을 창조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예수 선구자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았더라면 어찌 인류 가슴속의 검은 하늘을 개이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싯다르타 태자의 고행과 깨달음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았더라면 어찌 사바세계에 자비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었겠습니까? 선행자들의 발자취를 자세히 살펴 보십시요 그것은 더없이 진귀한 보석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발자취는 우리가 창조하고 있는 재부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걸으면서 수많은 발자취를 찍어놓습니다. 하지만 그 누가 멈춰 서서 자기가 창조한 재부를 보겠습니까? 사람들은 흔히 이러합니다. 급히 앞으로 걸어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다급히 발길을 돌립니다. 사실 우리가 멈춰 서서 자신의 발자취를 잘 살펴보기만 한다면 다시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지 않을 것입니다. 생활과 수행 공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바로 깊은 생각을 갖고 길을 걷는 자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에게 속한 재부가 적다고 한탄하고 있는데 사실 자신의 발자취가 바로 풍부한 재부입니다. 발자취는 우리가 후대들에게 남기는 재부입니다.

세상에는 원래 길이 없었습니다.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길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발자취가 많은 곳이 큰 길이고 발자취가 적은 길이 오솔길이란 도리를 일깨워줍니다. 사람들은 흔히 제일 좋은 것을 후대들에게 남겨주려 합니다. 사실 제일 좋은 것이 바로 발자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생의 정력을 다 바쳐가며 탄탄대로에 발자취를 남겼을 때에 우리는 후대들에게 내가 걸어 온 길을 따라가라.”며 긍지를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필생의 정력을 들였지만 한낱 꼬불꼬불한 오솔길에 발자취를 남기기도 합니다. 이 길은 진흙투성이어서 자칫하면 미끌어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귀중한 재부입니다. 이는 후대들에게 침통한 교훈을 주거나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닌 후대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걸음마다 잘 내디뎌야 합니다. 저의 은사스님 방에 들어서면 서투르게 그린 연꽃 그림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습니다. 늦은 연세에도 그림 배우기에 몰입하시는 은사스님의 수행정진의 발자취입니다 저에게 남겨 주시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발자취에는 무형의 발자취도, 유형의 발자취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자신이 푸른 물결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달리는 항행자임을 발견하였습니다. 때론 한 폭의 수채화를 방불케 하지만 때론 하늘과 땅을 뒤흔들듯이 세차게, 사품 치는 고해의 바다에서 돛을 올리고 거센 폭풍을 헤지며 피안의 언덕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연습이 없는 고해에서의 항행이지만 내 삶의 쪽배를 힘차게 저어 나가고 있습니다. 늘 외우는 시 한 수가 있습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당신을 안으면 나는 물이 옅으나 깊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오지 아니하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낮에서 밤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뒤로 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젠가는 오실 줄만 믿습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며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고해에서 중생구제의 노를 저으셨던 만해 한용운 스님의 발자취입니다. 이는 무형의 발자취이고 무형의 재부입니다.

저 웅위로운 호거산 아래 청정한 운문사 도량에는 수많은 수행자들의 발자취가 찍혀있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걸어왔으니깐 이는 유형의 발자취이고 유형의 자산입니다. 발자취는 하나의 재부임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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