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인과因果라는 것은? - 사미니과 지형

가람지기 | 2017.04.19 12:56 | 조회 87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법사를 맡은 치문반 지형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말은 진실입니다. 우주는 인과법에 의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항상 과거의 일이며, 결과는 지금 내 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 벌어진 일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에 지금이라는 시간은 결과이면서 새로운 원인이 됩니다. 인과법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연기관계입니다. 과거로 말미암아 현재가 일어나고 현재에 의해 미래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표면의식으로 하는 모든 행위는 업이라는 이름으로 무의식에 저장되어 다음 생의 주체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금생에 지은 업은 일종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죽으면 육신은 4대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지나 업은 사라지지 않고 다음 생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과거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지금의 인연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내가 지금 그 길을 어떻게 가고 있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에 운명은 있기는 하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업의 순환 원리라고 합니다.

  

업의 순환 원리로 보면,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 전생과 금생은 서로 반대로 인연지어 집니다. “너의 과거 전생을 알려면 지금 너에게 주어진 환경을 보고, 너의 미래를 알려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지금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도 과거 전생의 나의 모습이요, 고통을 주는 사람도 과거 전생의 나의 모습입니다. 전생에 내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었다면 금생에는 상대방이 나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가까운 인연으로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남이 지은 업이 내 것으로 돌아오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못 이해해서 인과법을 숙명론이나 보복의 논리로 보면 안됩니다. 인과법은 원인에 의한 결과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연기관계로서, 일어나는 현상은 있으나 그 현상을 주체하는 주체자主體者는 없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심지않고 가만히 두면 결코 싹은 돋아나지 않습니다. , 적당한 습기와 온도, 농부의 손길과 같은 조건과 환경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 주위에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나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보면 나쁜 사람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보면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닌 다만 그 일뿐이므로 무자성無自性입니다. 인연에 따라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입니다. 인과법으로 본다면 나를 괴롭히는 지금 그 사람은 전생의 내 모습이므로 나는 전생의 내 모습을 참회해야합니다. 이러한 원리를 알아야 진정한 용서를 하게 됨으로써 전생의 업이 녹게 되고 다음 생으로 이어지지 않고 윤회의 고리가 끊어지게 됩니다. 이런 원리를 깨달아 중도의 지혜가 완성되어야 비로소 삶의 모든 문제를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로 거듭 태어날 수 있습니다.

 

부처님 경구經句 중에승천왕반야바라밀경 제1의 현상품顯相品에 나오는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身無僞行 離邪威儀(신무위행 이사위의) 몸은 거짓스런 행이 없고 삿된 위의를 여의며, 口無巧言 如實而說(구무교언 여실이설) 입으로는 교묘한 말을 하지 않고 진실하게 말하며, 受恩常感 輕恩重報(수은상감 경은중보) 받은 은혜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가벼운 은혜라도 두텁게 갚으며, 心不懷憾 口恒軟語(심불회감 구항연어) 마음속에 한을 품지 않고 입으로는 항상 부드럽게 말하며, 如是修習 淸淨之心(여시수습 청정지심)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닦고 익혀서, 不見能汚 不見可染(불견능오 불견가염) 더러움을 보지도 않고 물드는 것도 보지 않으니, 無二無別 自性離故(무이무별 자성리고) 둘이 없고 다름도 없어서 자성을 여읜 까닭이다.

 

몸으로는 거짓스런 행동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처신을 하지 말고, 입으로는 꾸미는 말, 아첨하는 말을 하지 말고 진실 된 말을 할 것이며, 받은 은혜는 비록 작은 것이라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은혜의 크기를 가늠하여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속에 한을 품지 않고 입으로는 부드럽게 말한다는 것은, 우리는 누가 나에게 조금만 서운하게 하면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식으로 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바꿔서 상대방을 부처님이 보내신 여래사자라고 생각하며 나의 업장소멸에 힘써주어서 감사하단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겉으로 마음을 다 내보이지 말고 부드럽게 말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닦고 익힌다면, 더러움을 보지도 않고 나아가 그 더러움에 물드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무이무별無二無別이라 했으니 둘이 없고 또한 분별하지도 않아서 자성은 좋거나 싫다는 양변兩邊을 떠난 중도를 알게 될 것입니다. 생각을 일으켜서 분별하다 보니 물드는 것이지 자성 그 자체가 일체 시비에 물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할까요? 지나간 과거는 돌이켜서 원망하지 않으며, 다가올 미래를 기대가 가득찬 심정으로 바라보거나 걱정하며 헛된시간을 소비하면 안되겠습니다. 현재,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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