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지금, 이 순간 수행하기 - 대교과 혜열

가람지기 | 2017.12.02 09:49 | 조회 10

다 함께 부처님께 세 번 귀의하겠습니다.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혜열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수행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수행을 잘 하는 것일까요? 사실 저는 제가 지금 수행 중인지 아니면 승가라는 또 다른 사회 속에 그저 적응해 나가며 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수행의 원어인 빨리어 ‘bhāvanā’의 뜻은 가치 있는 마음들이 순간순간 생겨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치 있는 마음이란 선과 불선으로 따져 본다면 당연히 선한 마음이겠죠. 수행을 한다는 것은 탐··치가 없는 선한 마음을 키워나가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도 많은 순간 탐··치와 함께 합니다. 이것은 마치 공기 중의 산소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숨을 쉬듯이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이 마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여실히 볼 수 있게 해주는 이 곳 운문사에 있습니다. 매일 매일, 시시때때로 우리 밑바닥의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한 가지로도 벅찬데 늘 세트로 따라와 나를 괴롭힙니다.

우리는 많은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마다 불만족스럽고 화가 납니다.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 탐심과, 이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진심, 그리고 이 둘의 밑바탕에는 오온이 공함을 보지 못하고 가 있다고 믿는 이 뿌리 깊은 무명, 치심이 깔려 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 생각의 굴레 밑바닥에는 늘 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좋다·싫다, 옳다·그르다 등의 개념으로 분별하고 판단하며 업을 짓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이들의 노예로만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이것을 극복하고 마음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같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순간에 몸과 마음이 함께 지금, 여기에 머물러야겠죠.

우리가 일념으로 기도하는 순간, 발우공양 시간에 조용히 마음 챙기며 공양하고 있는 순간, 다른 망상 없이 현재 사는 소임에 충실하여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 도움을 요청하는 도반스님의 말에 주저 없이 일어나 도와주는 순간, 이러한 순간들은 모두 탐··치로부터 벗어나 있는 순간들입니다. 이런 순간순간들이 모여 나의 하루가 되고, 일년이 되고, 나의 삶이 됩니다.

만약 내 기도시간, 내 공부시간에 지금 필요한 다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만스럽다면 이것은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이고 이 때 가 없는 것입니다.

출가 전, 저는 저 나름의 수행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전에 나온 부처님의 말씀대로 수행하여 금생에 꼭 열반을 보겠다는 확고한 결심과 함께 말이죠. 그래서 경전을 공부하는 것과 참선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일들은 저에게 무가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수행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집착 때문에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도 했고,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며 그 순간에 마음을 두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출가하여 제가 얻은 가장 큰 이득은 일상과 수행이 따로 있지 않으며 바로 지금이 수행하기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4년의 시간을 겪고 보니 운문사는 정말 수행하기 좋은 곳입니다. 때로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 괴로운 시간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건 왜 이렇게 해야 되지’, ‘저 스님은 왜 저러지’, ‘이게 맞는 걸까갖가지 망상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 다양한 상황 속에 나와 상대를 이해하고, 그 순간을 살아보려 애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보이지 않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홀로 고요한 곳에 앉아 있다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다양한 마음들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이런 모든 마음들이 결국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 기회도 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인 것이죠. 지난 4년간 저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신 대중스님 여러분,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의 소중한 매 순간순간이 법의 기쁨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발원하며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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