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사교과 진오上스님

가람지기 | 2017.12.02 09:50 | 조회 13

불교는 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제가 불교를 마음에 두게 된 것도 사는 것이 고통스럽구나하는 자각에서부터였습니다.

초등학생 때에는 친구가 어려웠습니다. 학교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웃고 떠들던 친구가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다른 친구랑 노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상했습니다.

20대에는 사랑이 어려웠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다른 또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보편적인 일들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마치 언제라도 깨질 듯한 유리병 같은 마음으로 쉽게 상처받고 아파했지요.

순간순간 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세상을 보면서 제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려웠기에 저는 특별히 마음공부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은 無常하다는 진리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저 막연하게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 라고 되뇌기만 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출가를 하게 되었고, 강원에서 사교반이 되어 금강경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이라고... 그 어떠한 것도 라고 할 것이 없다고... 그런데 문득 그저 이론적으로, 습관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때 생각해 두었던 장기기증을 떠올리며 지금 당장 내가 죽는다면?’하고 하나하나 그 과정을 자세하게 상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멎고 적당한 때가 되어 의료진들이 수술을 위해 차가운 베드에 아무렇지 않게 혹은 조심성 없게 제 몸을 하고 내려놓는 장면이 상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이미 생명이 다한 시신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수술할 때 느껴질 두려움 이전에 나의 몸을 함부로 대한다는 서운함이 느껴지는 저를 보면서 공부가 하나도 안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 쓰는 것이 어려워서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절감했으면서 이 몸을 라고 착각하며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말세 중생인 저에게는 라는 존재를 정신과 물질로 낱낱이 분석하여 보지 않으면 집착을 여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특히 윤회하게 한 원인들을 중심으로 를 해체하여 無常 · · 無我로 체득하도록 수행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 존재를 보면 마치 빛의 스펙트럼처럼 각각이 분리된 색깔들을 볼 수 있듯이, ‘無明, ·瞋癡, 因果, 12緣起, 四聖諦, 八正道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나를 無明으로 보아야 합니다. 무명의 결과로 이루어진 존재, 즉 정신과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능엄경에 따르면 본래 밝은 자신을 그대로 알지 못하고 밝혀보겠다는 根本無明에서, 전도된 한 생각에서 밝히려는 주체와 밝혀지는 객체로 나누어지면서 不二에서 둘이 됩니다. 결국 分別이 우리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근본무명 이후 존재의 윤회는 갈애와 집착을 바탕으로 하기에 존재를 보면 무명갈애’, ‘집착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나를 ‘12緣起 그리고 무수히 많은 12緣起의 반복으로 보아야 합니다. 12연기의 과정으로 윤회를 반복하였으니 12연기 ’1세트로 지옥에, ‘1세트로 아귀도에, ‘1세트로 축생도에... 천상에 머무르며 떠돌고 떠돌아다녔지요.

세 번째는 나를 업의 因果로 보아야 합니다. 무수히 많은 동안 내가 ··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을 알면 나를 알고, 내가 왜 윤회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번째는 나를 ··로 보아야 합니다. 무수한 을 윤회하면서 일으킨 ··集積으로 보아야 합니다. ··치에 의하여 형성된 의 결과로 우리들이 존재하고, 현생을 살면서도 늘 탐··치에 이끌려 六道를 윤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는 나, 오온을 四聖諦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이렇게 오온으로 다시 윤회하지 않도록 八正道를 연상할 수 있어야합니다.

대승불교로 이야기하면 나를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마음에서 모든 것이 생겨난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하늘을 보며 마음’, 구름을 보며 마음’, ‘청풍료...마음’, ‘마음’, ‘마음 이라고 속으로 새깁니다. 이렇게 말하며 모든 것이 나의 마음 씀에 따라 저와 온 세계를 만들었음을 자각하려합니다. 마음 따라 일어나고 사라질 테니까요.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말세시대를 보면서 이것이 괴겁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테러와 전쟁, ‘묻지마 살인’,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들... 축생을 지옥세계에 살게 만드는 우리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이보다 더 메마르고 잔인해질 수 있을까? 정말 한 세상이 갈 때까지 갔다면 이제 다시 정화될 시기가 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미래의 세계에 대하여 언급하신 경전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일곱 개의 태양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체 유정의 이 다하여 이 세간은 불과 물, 바람에 의하여 파멸되고 나서 20중겁동안은 공겁(空劫)으로 허공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일체 유정의 업의 증상력으로 20겁의 성겁(成劫)이 시작된다... 이와 같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하여도 무명에 눈 멀고 갈애에 구속되어 돌고 도는 중생의 고통은 끝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저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과 윤회가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이길 바라고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수행자이든 수행자가 아니든, 사람이든, 벌이든, 꽃이든 모두 無常 · · 無我를 여실히 보고 이 苦海에서 벗어나기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세계와 존재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발원합니다.

 

 

 

어떠한 존재가 아닌,

우리 한 줄기 빛이 되어 만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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