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의 일체유심조_정원스님

가람지기 | 2011.10.26 18:43 | 조회 3450


 

나의 일체유심조

 

안녕하십니까? 사집반정원입니다.

처음 강원에 오실 때 대중스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오셨나요?

저는 여러 가지 많은 기대와 계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중에는 건강하게 무장무애하게 잘 살다가 무사히 졸업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바램은 와서 사흘 만에 무너졌습니다.

신중기도3일을 끝내고난 다음날, 새벽예불을 마치고 정랑에 볼일을 보고나와

동방아를 집는 순간 뭔가 둔탁한 것이 눈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그 순 간 내 뇌리를 스치는 생각....... ‘아! 눈알이 터졌겠구나.’ 동방아를 거는 횟대의봉이 눈을 찌른 것입니다. 극심한 통증과 흐르는 눈물로 눈을 뜨지도 못하고, 이쪽 저쪽 골목을 꺾어 이끌려 들어간 방! 그곳은 바로 대원실이었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대원실을 방문했고, 제일 처음으로 병원출타를 가게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 ‘흠....... 내가 신중기도 때 졸면서 기도를 해서 벌을 받은 것인가?’

그 이후로 저는 너무나 많은 시련의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손가락인대가 늘어나서 반깁스를 해야 했으며, 급체는 또 어찌 그리도 많이 하는지.......

아! 급체와 관련해서 한 말씀드릴께요. 제가 심하게 급체를 하게 된 것은 치문여름 때 였습니다. 쉬는 날 선녀탕에 물놀이를 가기로 계획을 다 잡아놓은 상황에

후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그때의 저는 분노로 머리가 터져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왜 하필 내가 쉬는 날 후원에 들어가야 하느냐고! 이렇게 많은 반 스님들을

놔두고, 왜 나냐고, 왜! 반응은 바로 나타났습니다. 급체로 쓰러져 버린겁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급체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 일로 후원은 반스님이 대타로 나와서 살고 저는 또 대원실로 갔습니다. 가만히 짚어보면 대원실에서 많이도 살았네요. 어쨌든 졸면서 한 신중기도의 과보는 그런 식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수많은 과보로 인해 저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내가 운문사에서 살 연이 아닌 가보구나. 내 연은 여기 까지인가 보구나.’
이런 헛된 망상과 번뇌의 바다에서 허덕이며 지내던 어느날, 그 날도 열심히 운력을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생각

‘그래! 신중님들이 나를 운문사에서 내쫓기 위해 방해공작을 펴시는 것이 아니고,내가 나름 착하고, 열심히, 성실히 수행생활을 했기 때문에 크게 다칠 것도 이 정도로 끝나게 하신 것이다.‘ 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이루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위안을 얻었습니다.

급체를 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내가 쉬는 날 잘 걸리고, 또 남들보다 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으면 그건 내가 전생에 남들보다 쌓은 복이 적어서 이생에서 많이 쌓게 하려고 그런 것이라

생각하면 끝인데 어리석은 한 생각으로 내 몸과 반 스님들과 대중들을 뇌롭게 하는 일을 저지르게 된 거죠. 이처럼 한 생각으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것!

웃기는 얘기 같지만 제 좁은 소견으로는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일체유심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대중스님들 운문사이던 아니면 어디서든 우리의 수행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든 것이 되고, 당연히 해야 하고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잘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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