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반복은 나의 힘_덕해스님

가람지기 | 2011.12.26 13:40 | 조회 3600


반복은 나의 힘

사교반 덕해스님     

 

이런 긴 겨울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하는 시인은 말합니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그렇지만 삭발염의한 우리에게 ‘질투’나, ‘사랑’이나 이런 극도의 감정이 힘이 되는 경험은 이미 과거의 일이고, 앞으로 올 기회는 극히 적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힘 삼아야 할까요?
안녕하십니까. “반복은 나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교반 덕해입니다.

강원에 오기 전 이런 겨울 저녁 새중인 형님과 저는 노스님의 부름을 받고 경전방에 앉았습니다. 형님은 노스님께 강력하게 강원에 가기 싫다는 주장을 피력했고, 가만 듣던 저도 처음으로 노스님께 제 소견을 말씀드렸습니다. “노스님, 저도 강원 가기 싫습니다.” 형님이사, 나이도 나이이려니 또, 자유분방한 성격을 알고 있으신 터라 가만 들어주고 계시던 노스님께서는 단호하게 결론지어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은 옛날 같지 않아 혼자 독학하는 것보다는 앞으로를 위해 강원에 가는 것이 순리인 듯 하니 가거라.” 이 종결 한마디에 따라 저는 강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강원생활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세 번의 예불과 세 번의 공양, 세 번의 입선과 세 번의 설거지, 세 번의 울력 그리고 한 번의 수업. 취침 후 다시 새벽3시. 이렇듯 우리의생활은 쉼이 없이 계속되었는데요. 이런 하루 세 끼 밥 먹는 일상의 반복, 행자시절부터 익히기 시작한 이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에 가장 크게 번민을 냈던 시기는 치문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원 설거지와 종두소임 그리고 체력의 한계점을 찍은 김장울력 후 새벽에 일어날 때, 유독 힘든 날이 빈번해졌습니다. 몸이 힘들수록 혼자 있을 공간을 갖고 싶었고, 시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화가 나는 등 일상생활에 불만족이 치성해졌습니다.

그날도 소란스런 지대방을 피해 추운 종두통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물을 뜨러 온 우리 반 비구니스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비구니계를 받았다면 강원에 있지 않을 것 같아요.” 그 한마디에 “어쩌면 비구니이니까 이 생활을 더 쉽게 견딜 수 있을 지도 몰라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그 짧은 대화는 거기서 끝나고 시간은 흘러 사교가 되었지만, 그 한마디가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쯤 와서야 이 절집생활이, 나아가 강원생활의 짜인 일과표가, 효율적이지 못한 체계가, 반복의 일상이. 의미가 있음을 알겠습니다. 자신이 왜 바쁜지도 모르고 바쁜 강원의 일상이 반복됨은 그것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형님은 출가 전에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출가하고 밀려드는 세 끼 밥 먹는 일상사에 일주일을 참고 이 주일을 참고 물었다 합니다. “왜 절엔 일요일이 없나요?” 그 말에 모두들 웃었다 했지만, 일요일이 없는 속뜻은 수행에 쉼이 없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강원에 오기 싫었던 이유 또한 명백해졌습니다. 단체생활과 반복. 두 가지 원인이었습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성격의 저는 단체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반복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 거부감은 제 머릿속에 1년 365일 쉼이 없이 반복하는 생활공간이라 하면, 의무교육기관인 학교와 군대와 감옥 또는 병원의 이미지로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감옥과 군대와 병원만이 아닌 사실, 우리의 삶도 반복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단지 시간과 공간이 늘어난 반복활동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가장 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그것이 싫어’하면서 하지 못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으로 포장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어있었습니다. 즉, 제가 가장 하기 힘든 일을 은연중에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원생활의 불만족을 낳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반복을 긍정해 봅니다. 밥을 세끼 꼭꼭 챙겨먹으면서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미니인 우리에게는 4년이라는 일과표의 반복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리고 그 시간은 때론 우리를 고요하게 만들어 주기도 할 것이라고요. 서장에서 배운 달마스님의 ‘외식제연하고 내심무천하여 심여장벽이라사 가이입도니라-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구하는 마음이 없어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사 도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는 말은 멀리서 찾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단조롭도록 같은 생활을 계속 반복해 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 아닐까요?

철학자 데카르트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고 합니다. “억세고 활동적인 데다가 남의 사정에 궁금해 하기보다는 자기 일에 더 골몰하는 그 대단한 백성들의 무리에 섞인 채, 사람의 왕래가 가장 잦은 대도시가 갖추고 있는 편리함은 골고루 다 누려가면서 나는 가장 한갓진 사막한가운데서 사는 것 못지않게 고독하고 호젓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암스테르담에서 영위했던 그의 삶에 대해 말합니다.

‘도무지 변화라곤 없는데다가 계속적이며 공개적인, 그리고 극단적으로 단순한 생활의 영위.’(장 그르니에, 『섬』-「비밀스러운 삶」) 그것과 우리 강원생활은 참 닮아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지금 이 변화라곤 없는 단순한 생활의 영위가 누구에게는 수행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군복역기간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수감생활일 것입니다. 이 겨울, 가장 두려워 피하고 싶은 반복을 긍정하는 힘, 그것이 저의 생활을 수행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말해봅니다. <반복은 나의힘!>이라고.

대중스님 여러분, 이 긴 겨울밤에 <바늘처럼 예리하고, 다이아몬드처럼 강하게> 마음 닦는 수행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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