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승가의 현존에 감사하며..._혜월스님

가람지기 | 2012.03.30 14:05 | 조회 4235



승가의 현존에 감사하며...


혜월 / 대교과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대중스님! 삼보, 즉 3가지 보배를 잘 아시지요?
오늘 저는 이 삼보 중에서 승가의 소중함과 그것의 현존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비구니의 기상과 맥이 살아있는 한국에서 태어나 출가하신 대중스님들께서는 승가의 소중함을 잘 알고 계시겠지요?

무슬림이 국교인 저희 나라에선 승가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절이 있더라도 종교 단체가 아닌 사회복지 단체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불교 동아리에서 활동하다 불교를 알게 되었고, 청정도론을 읽고 그런 수행자가 되고 싶어 법사스님께 출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법사스님께서 말레이시아에는 승가가 없으니 출가하고 싶다면 미얀마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우선 법사스님 아래서 흰색가사를 입고 8계를 지키며 상좌부 비구승가제도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때 승가가 없다면 출가하기가 불가능 하다는 사실과 승가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얀마로 가기 전에 태국 첫 번째 비구니이면서 사키야디따 의장을 지낸 담마난다 비구니가 주지로 주석하는 사원에서 3개월간의 안거를 시자소임으로 지냈습니다. 그때 그곳엔 동남아시아와 스리랑카, 티벳, 유럽에서 온 비구니, 10계 또는 8계를 지키는 여성출가자와 재가자들이 모여 안거를 지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여성수행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비구니 승가를 부흥시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비구니계와 비구니 승가의 역사를 배우면서 적합한 승가 교육을 받지 않은 출가 여성들이 겪는 어려운 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저는 미얀마로 가서 10계를 지키는 출가 생활을 했습니다. 계, 정, 혜 3학의 불법이 아직도 살아 흐르고 있는 남방불교 승가의 바다에서 작은 물고기가 되어 바닷물을 마시고 그 맛이 짜다는 것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4년 동안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신심과 열정은 자라났지만 비구니 승가가 없는 승가에 대하여는 때때로 설자리 없는 불안한 마음에 당황스러웠고 절망의 순간도 간간히 있었습니다.

여스님들은 정식적으로 탁발이 안 되는 그곳에서 아침에 발우를 들고 근처 시장에서 탁발할 때 일어나는 불안한 마음을 이곳 비구니 승가의 극락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대중스님들께서 이해하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발우 공양에 빠지고 싶어 하는 우리 스님들을 볼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객으로 다른 사찰에 갔을 때 그들이 정해준 예불자리를 보면서 느끼는 당황스럽고 난처한 심정을 대중 스님들이 상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예불시간에 빠지고 싶어 하는 우리 스님들을 볼 때 일어납니다.

삭발하고 출가자 모양의 옷을 입었지만 승려 신분을 인정받지 못한 남방여성 출가자들은 민망과 좌절 속에서 결국 불교의 전파와 발전을 이루어내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체 약자로 남아 있는 실정입니다. 전쟁과 굶주림으로 인해 남방에서의 비구니 승가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들은 ‘계를 지키는 여자’라는 이름으로 비구스님으로부터 8계 또는 10계를 받아 지니는 출가 생활을 합니다. 그들이 비록 10계를 잘 지키며 출가 생활에 어긋남 없이 살더라도 비구니계를 받을 승가가 없기 때문에 그들을 사미니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승가란 무엇일까요? 계와 율에 의한 스님으로써의 생활방식이겠지요? 올바른 방법으로 가사를 수하고 올바르게 발우공양을 할 줄 알고, 스님으로써 적합한 예의, 언어 습관, 사고방식 등이겠지요? 저는 상좌부 여러 나라를 수행 다니면서 출가한지 오래되었거나 또는 얼마 되지 않은 여성출가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어떻게 발우공양 등을 하는지, 또는 출가자로써의 마음가짐 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승가의 현존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토론하며 그것의 필요성을 통감하곤 했습니다.

상좌부에서는 비구니 승가가 사라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스리랑카에서 전래 계를 받은 중국 비구니와 대만에서 활동하는 비구니들과 1600여년 동안 계맥을 이어 오고 있는 한국 비구니들인 대승불교 비구니 승가가 현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불교는 종단적 차원에서의 체계적인 행자교육으로부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계를 받은 이후 5안거 동안은 스승 아래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율법에 맞게 승가교육 시스템이 잘 시행되고 있습니다.

전통 강원교육 시스템은 대중과의 화합을 핵심으로 하면서 각자 소임에 책임을 다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승가의 화합을 위해서 개인을 양보해야합니다. 대중생활의 규칙을 대중이 함께 결정하고 지키는 법은 마치 부처님 당시에 상가회의가 있을 때는 상수멸진정에 든 아라한일지라도 참석해야하는 것처럼 대중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운문사는 부처님과 같이 깨닫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사원을 관리하며 계율을 지키고 승려로써의 자신감을 가지고 수행해 나가며 불법을 유지, 전파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비구니 승가교육원입니다. 발우 공양하는 법, 가사 수하는 법, 스승님과 대중스님들을 시중하는 법, 선 후배 스님들과 도반스님들에게 갖춰야 할 예의, 심지어 이 자리에서 법문하는 것, 이 모든 습의들은 승가에 대한 인식교육입니다. 이러한 승려로써의 인식이 약할 때 쉽게 사견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치문에서 몸을 조복 받는 힘을 키우고 사집에서는 받 농사를 통하여 공양물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치는지를 이해하게 되고 사교 때는 후원에서 대중스님들을 외호하는 법을 배우고 화엄에서는 대중을 이끌어가는 기술과 사찰을 운영하는 능력까지 배우게 됩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때 쉽게 섭수,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속이나 다른 전통 사회속에 있을 때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그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승가의 현존은 여성출가자들이 올바른 생계활동을 통해서 의, 식, 주와 의약품을 얻을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것은 곧 승려의 삶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2부승 제도까지 잘 남아있는 한국의 승가 교육 시스템은 출가는 했으나 승려 인증을 받지 못하고 고아처럼 살아오고 있는 동남아나 서양의 많은 출가 여성들이 간절히 바라는 꿈의 세계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어시고 처음으로 왕궁을 방문했을 때 야소다라는 아들 라훌라를 시켜 아버지께 ‘유산을 달라’고 요구하도록 했습니다. 라훌라가 유산을 달라고 하자 붓다께서는 아들을 출가시켰습니다. 스님이 되는 것이 아버지인 붓다의 유산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석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사지 존자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그분의 스승과 법을 알고 싶어 했던 사리붓더라 존자처럼 우리 승가가 있기 때문에 불, 법이 살아있을 것입니다. 붓다의 유산인 승가가 오래토록 머물게 하기위해 그분 가르침의 핵심인 계, 정, 혜 3학을 부지런히 닦아 우리 스스로를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저 또한 승가의 한사람으로써 불법이 오랫동안 이 땅에 머물기를 바라며 여기서 배운 교육시스템을 상좌부 출가 여성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상가의 한사람으로써 설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것이 한국불교가 세계불교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차례법문을 하고 들은 공덕으로 우리 모두 고통의 소멸인 열반에 도달하기를 발원하면서 저의 서투른 발음을 귀 기울여 들어주신 대중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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