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반복의 힘_원담스님

최고관리자 | 2012.11.21 14:51 | 조회 3891


반복의 힘

원담/사집과   

청량한 가을 바람이 어느새 차가워져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오고 가는 때를 어김없이 아는 자연의 모습은 순리와 알아차림의 지혜를 한꺼번에 알려 줍니다. 또한 쉼 없이 오고 가는 대자연으로부터 전해오는 건강한 에너지에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오늘도 행복하십니까? 사집반 원담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법문 제목은 "반복의 힘“입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자비참기도와 염불수업, 원두반의 본분사, 입선, 운력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여름방학을 떠올려보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동안 많이 단단해진 저희들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바쁘고 힘든 생각조차 떠올릴 겨를이 없었던 치문때보다 험준했던 원두반 사집의 여름을 씩씩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힘겹고 고단하게만 느껴졌던 평범한 하루하루 반복을 거듭하면서 쌓인 힘, 바로 그 반복의 힘이 한몫한 이유라고 믿습니다.

몸과 마음의 소용돌이침을 조율하는 일에도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듯합니다. 잠시 예전의 저를 떠올려봅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

성공을 향해 온갖 명구를 자기암시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되뇌이며 시계 분침과 초침처럼 분주하게 사는 일에만 열중하며 더 나은 내일이 올거라 헛되이 꿈꾸면서 조금 나태해지면 스스로를 일깨우던 말이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 맞서고 어긋나는 일이 많아서 움직이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처럼 예상과 달리 벌어지는 뜻밖의 일에 고민하고 아파했고 답답해했던 나날이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허망하게 살다 죽어야 하나’하는 생각과 제 마음 어딘가로부터 끊임없이 메아리쳤습니다. 이러한 의문들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생각과 갈등이 치열했던 그 즈음 제가 만난 인연은 절을 통한 기도였습니다. 무작정 정해진 수만큼 채워나가면서 몸과 치르는 한바탕 고통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에 무심한 척 애쓰면서 발견하게 된 것은 들끓는 망상들이 한순간도 머무르지 않는 마음의 존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멈출 수만 있다면,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정말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은 그 마음이 영원함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믿습니다.

세세생생 애타게 만나고 싶은 그 무엇이 제가 그리워하는 바로 그 자리라는 것도 이젠 무조건 믿고 기도합니다.

이런 멋진 공부를 평생 할 수는 없을까 싶을 무렵 ‘24시간 깨어있는 의식’을 주제로 한 노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길이여야만 한다는 결심으로 세상의 인연들을 뒤로 한 채 출가했습니다.

삭발 후 노스님께서 가난부터 배우라는 말씀을 해 주셨고 무엇보다 시은에 대해 바른 생각을 세울 것을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생활을 익히는 일도 중요하지만 꼭 숙제로 스스로의 예참기도를 틀림없이 정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킬 것과 지키지 못하면 경책과 점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그 말씀들이 얼마나 자비로운 건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 내는 것보다 한 가지를 반복해서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설익은 일인가 뼈저리게 느끼면서 매일 발심해야만 하는 나날이었습니다. 신기한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도와 생활이 익으면서 몸에는 힘이 생겨나면서 마음에는 부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즐거운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긴장된 나날 속에 잠시 뵐 기회라도 생기면 스님께서는 오로지 하나만 죽는 날까지 반복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짧은 몇 마디 말씀이었지만 제 가슴 속에 도장을 찍 듯 크게 증폭된 뭔가 특별한 힘이 느껴지는 것이 의아스러웠습니다. 그것이 평생 수행하신 힘 일거라 생각됩니다.

일류열풍이 대한민국에서 세계로까지 뻗어나가는 요즘 공부에도 다양한 기법과 방법론이 난무합니다. 불교도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수행기법과 체험담들로 넘쳐나는 때입니다.

그러나 강원에 와서 생활하면서도 변하지 않은 신념은 끈질기게 하나를 부여잡고 열심히 열심히 반복하는 것만이 힘이 된다는 겁니다.

운문사에서 대중스님들과 함께 사는 일이 힘겹지만 복되게 여겨지는 것은 그 때의 기도를 통한 반복된 힘이 제 마음 한자리 굳은살이 되어 단단하게 버팀목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공부에도 인수인계가 있다면....운문사의 수많은 인수인계장을 들여다 보며 문득 떠올렸던 우스갯소리였습니다. 부처님의 경전속에 다 있을 텐데 밖에서 다른 것을 구하는 중생심이 또 고개를 듭니다. 오늘 또 한바탕 진짜 같은 꿈을 꿉니다. 언제쯤 오랜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꿈을 깨는 비법은 반복의 힘일 것입니다. 이 순간 스스로의 약속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힘들어도 반드시 스스로 약속한 공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어떤 경우에도 정성스럽게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함께 주인공으로 살 날을 간절히 간절히 발원해야 한다는 것을..

가을철 대총상 법문설을 배웠습니다.우리들이 병들어 아프게 된 이유와 처방이 함께 제시된 묘한 법문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일 수 있는 것은 그 속에서 싹을 틔워 자라고 있는 자기를 바로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폭류 속에서 강해지고 단단해지는 강원의 시간들이 벌써 아쉽습니다.

사집 첫수업시간부터 지금까지 수업시간 전에 하는 기도를 끝으로 법문 마치겠습니다.
경청해주신 어른스님 대중스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부처님!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세세생생 부처님과 법을 사랑하는 마음 물러나지 않겠나이다.
나날이 신심이 견고하고 보리심이 증장되어 정견이 확립되고 삼매가 현전하여 무량한 지혜와 복덕을 구족하여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하는 보살이 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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