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삼보께 귀의해야하는 중요성과 필요성 _ 원효스님

가람지기 | 2010.11.11 07:36 | 조회 3745




삼보께 귀의해야하는 중요성과 필요성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원효입니다.

쏜살같이 지난 4년을 보내고 이 자리에 오르니 더욱 큰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저는 오늘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 우리 수행에 왜 필요하며 그렇다면 어떤 마음자세귀의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치문 여름방학 때 겪은 일입니다.

개학하기 일주일 전 노스님과 함께 성주에 있는 토굴에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노스님과 토굴에 도착해서 풀도 뽑고, 고추도 말리고, 전도 부쳐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이 노스님께서 약수암으로 돌아가시고, 그곳에 혼자 남겨지게 된 저는 치문의 고됨과 본사에서의 고단함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도 잠시, 갑자기 알 수 없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밀물이 밀려오듯 다가온 이 외로움과 두려움을 외면해보려고 TV도 틀어 보고, 음악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감정을 바라보겠다며 가만히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몸부림을 치며 이틀이 흘렀습니다.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어 내일은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던 늦은 오후, 저는 아궁이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나무불,나무법,나무승" 이렇게 서너번 되새겼는데 그 순간 참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주체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이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이라고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싹 가라앉더니만 갑자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와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놀랍고도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이후에 꿈속에서 무섭고, 힘든 상황을 만났을 때 또 한 번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이라고 염송하였는데 그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전 그 무서운 꿈에서 벗어나 단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왜 우리가 이 삼보께 귀의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불자가 되기 위해 제일 먼저 삼귀의계를 받고, 우리의 모든 법회 등에 앞서 삼귀의를 해야 하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구나 생각했을 뿐입니다. 한참 시간이 흘러 저는 아함경과 보리도차제를 통해 삼보께 귀의하는 것에 대해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잡아함경 35권, 삼보를 염하는 경'에 의하면 바이샬리국의 많은 상인들이 길을 떠나기 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서 법을 청하였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먼 길을 떠나는 이 상인들에게 이렇게 설법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넓은 벌판을 가다가 두려움이 생겨 마음이 놀라고 털이 곤두설 때에는 여래의 일을 생각하라. 즉 여래, 응공, 등정각 내지 불세존을 생각하는 자는 두려움이 곧 사라질 것이다.

또 법의 일을 생각하라.

부처님의 바른 법과 율은 능히 현세에서 번뇌를 떠나게 하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 통달할 수 있으며, 그것을 가까이 하는 인연으로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또 승가의 일을 생각하라.

세존의 제자는 착하고 바르게 나아가며 나아가서는 세상의 복밭이 된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 두려움은 곧 사라질 것이다. 너희들이 넓은 벌판으로 가다가 두려움이 생기거든 여래와 법과 승가의 일을 생각하라."

아함경에서의 이 말씀은 제가 직접 경험했던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또한 티베트의 가장 중요한 논서일 뿐만 아니라 티벳인들이 늘 가까이하는 가르침인 보리도차제를 통해서는 삼보께 바르게 귀의하는 방법이 무엇이며, 귀의하는 불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 지를 확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삼보께 바르게 귀의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윤회와 삼악도의 고통을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 두 번째는 그 고통에서 구제해 줄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불, 법, 승 삼보에 있다는 믿음, 이 두 가지입니다. 만일 이 두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바르게 귀의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것을 구제해 줄 수 있는 귀의처를 찾으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며, 귀의처에 대한 믿음도 없어서 귀의처를 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큰 병에 걸린 환자가 있다면 그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의사와 약과 간호사, 셋 모두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이 삼악도와 사바세계의 병과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벗어나는 방법을 보여 주는 의사와 같은 불보와 벗어날 수 있는 길인 약과 같은 법보와 간호사와 같이 수행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승보, 모두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귀의하는 불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에 대해 여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귀의처의 위대한 덕목을 자주 사유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삼보의 은혜를 생각하며 무엇을 먹고 마시든 먼저 공양을 올린 후에 먹는 것입니다.

셋째는 다른 사람들이 외도의 무리에 들어가지 않도록 대화를 할 때에 삼보의 위대한 덕목을 말해줌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귀의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넷째는 신심으로 낮에 세 번, 밤에 세 번 귀의문을 읽으면서 삼보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모든 일을 할 때 삼보께 의지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때, 혹은 농담으로라도 삼보께 귀의함을 버려서는 안 되는데 이는 본인 스스로 불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어떠한 경우라도 삼보를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불법을 만나서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그 갈피를 잡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분명 무수히 많은 해탈법문을 해주셨는데 저는 이 가르침 앞에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삼보께 귀의한 이후, 저에게는 나침반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힘들 때 삼보께 의지하는 것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이라고 염송합니다. 여기에 계시는 모든 대중스님들과 함께 삼보께 온전히 귀의하여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지난 4년 동안 지켜봐주셨던 어른 스님들과 못난 꼴을 봐줬던 저의 도반인 화엄반 스님들과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했지만 늘 웃으면서 다가와줬던 후배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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