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설중매의 향기_덕념스님

가람지기 | 2010.12.29 18:14 | 조회 3262



설중매의 향기



  안녕하십니까?

대중스님 여러분!

‘출가(出家)’는 문자대로만 뜻을 새기면 집을 나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순서를 바꿔 ‘가출(家出)’이라 하면 집을 나가는 것이 됩니다. 느낌이 좀 다르지요. 후자는 ‘가출 청소년’에 익숙해서인지 불만의 표출방식이라 수동적 느낌이 듭니다. 전자는 주체적으로 집을 나오는 것이고요. 전자든 후자이든 물리적으로 집을 떠나는 것인데 이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변화를 감행하는 의지의 표현일 것입니다.

오늘 저는 ‘출가’의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저에게 출가 수행자의 길을 가게끔 담금질해 주던 황벽 선사의 가 더욱 생각나는 때입니다.

번뇌를 멀리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
 승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할지어다.
 추위가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았다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이 추위가 그래도 견뎌지는 것은 봄날 눈 속에 꽃을 피우는 매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듯이 한번은 전심전력해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하는 결의가 마음 한구석에 항상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으면서 발바닥이 참 땅에 붙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정말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던 날, 늦은 밤에 은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지내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근래 자꾸만 허공 속을 거니는 듯합니다.”

  “그래, 출가할래요?”

  “그럴까요?”

그렇게 해서 지금의 노스님을 뵙고 일주일 만에 절에 왔습니다.

제가 출가하겠다고 했을 때 지인들은 한결같이 응당 제 갈 길을 간다고 여겼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어찌 가지 말라고 옷자락 부여잡는 사람도 없느냐고 했습니다.

그렇게 절에 와서 좌충우돌 절 생활을 익혔습니다. 절이 그렇게 낯선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이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가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다녔던 절들은 대부분 비구 스님들이 있는 도심 사찰이었습니다.

처음엔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서 난처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공양하며 은사스님께서 ‘덜기름 좀 주라’ 하셨는데, 전 ‘덜 그릇’으로 알아들었고, 새 이불을 주시면서 ‘이거 새끼다.’ 하시는데 엄마 이불이 따로 있나 생각했습니다. ‘후원’을 건물 뒤쪽에 있는 화단쯤으로 여겼다가 공양간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정랑과 정통도 낯선 용어였지요.

쏟아질 것 같은 별빛이 그야말로 장관이었지만 새벽 3시 기상도 쉽진 않았습니다. 낯선 용어와 새로운 생활습관을 익히느라 정신없을 즈음 큰절에서 하는 본말사 행자들을 위한 불교기본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시공양 후 한참 땀방울을 쏟고 나서 받게 되는 수업은 졸음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불교개론 강사 스님께서 저희에게 어떻게 공부하고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하는 우리에게 스님은 도자기 안에 어린 새가 들어가 큰 새가 되었다. 꺼내 주지 않으면 죽게 생겼으니 자비심으로 새를 꺼내 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도자기를 부숴 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 도자기가 무진장 비싸다며 깨지 말고 꺼내 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 도자기를 어쩌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여러분이 지금은 행자이지만 공부를 챙기며 살아야지 그저 일이나 허덕허덕하며 지내면 무임금의 노동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새는 꺼내지 못했지만 제가 출가수행자라는 것과 어느 곳, 어느 단체에 들어왔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늦게나마 출가를 결심했을 때 금계를 굳게 지켜 청정납자가 되리라 서원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그 근본을 밝혀서 당당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공부길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뚫고 나가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내디딘 걸음이었지만 참 어리둥절해 하며 지냈습니다.

저 자신의 이 어리둥절함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요즘 세상에서는 출가수행자들에게 요구하는 바도 많이 변한 듯합니다.

계를 지키고 수행에 전념하는 것만으로도 출가 스님들을 존경하고 돕던 재가자들이 이젠 스님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기보다는 그들 역시 직접 수행을 하면서 그 결과물을 나누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교계 밖에선 상식을 벗어난 타종교인들의 만행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제 첫걸음을 시작한 저는 안으로는 저의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세상과 함께 할 수 있는 수행자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습니다.

제가 있는 곳의 의미를 명확히 해 준 성열 스님이 지은 [고타마 붓다] 중의 승가에 대한 글을 읽으며 오늘 저의 차례법문을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단체이기 때문에 중(衆)이라 했고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무엇보다도 의견의 통일이 중요했으므로 화합승이라 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역할은 스승이다.

재가자들이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이기 때문이요, 붓다를 대리하여 가르침을 펼치는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상가는 재가자들이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삶의 모델이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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