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부처님_도경스님

가람지기 | 2010.12.29 18:39 | 조회 3917



안녕하십니까? 우리 모두 부처님이란 주제로 대중스님과 함께하고픈 화엄반 도경입니다. 겨울내내 잘 오지 않았던 눈이 순간 펑펑 내리기 시작한 어느 날, 전 법당에서 눈이 오는 걸 보고 내려옵니다. 줄 풀어진 강아지처럼 뛰면서 혼자 눈을 굴리고 어느 새 눈덩이가 되더니 눈사람이 됩니다. 눈도 그리고 입도 그리고 모자까지 씌어주니 정말 사람 같습니다. 실컷 놀다가 ‘내일도 추우니까 또 볼 수 있겠지’ 하면서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저녁 늦게 뒷문으로 잘 있나 확인하려 가려는 순간 은사스님께서는 “눈사람 보려 가지? 추우니까 어서 들어와..” 전 또 킥킥 웃으면서 빼곰이 쳐다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눈은 다 녹아 모자와 나뭇가지는 물에 젖어 바닥에 있었습니다. 오전에 햇빛은 녹아버린 물과 깜박거리는 저의 눈에 눈물을 살포시 비추어주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었던 제 모습입니다.그 눈사람은 햇빛이라는 인을 만나 녹았고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서로 모를 뿐 보이지 않는 공간에 항상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인과 연이 서로를 알지 못하고 냇물은 흐르고 흘러 끝이 없지만 그 물 한 방울 한 방울은 서로를 알지 못하듯 바람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내 옆을 지나갈 수도 있고 따듯한 기운을 만나 어디론가 흘러서 가고 또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순수한 허공이 되어서 어디든 갔을 겁니다.

화엄경 [보살 명난품]에서는 생멸하고 유전하는 일체의 세계는 모두가 인연으로부터 일어나고 순간순간마다 소멸하고 있다.

또 인연에 의하여 일어나는 업은 비유컨대 꿈과 같은 것이며 따라서 그 결과 또한 모두가 적멸한 것이다. 또 바르게 사유하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모든 것에는 자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착과 잘못된 견해로 인해 참 많은 경계가 일어납니다. 마치 마음이 허공과 같아 무엇이든 만들어내듯 말입니다.

스스로의 틀에 자신을 맞추고 당연한 것들에 시비분별을 합니다.

또 수행자라는 상은 자기안에 소리를 누릅니다. 단 하루 한 순간이라도 스님이라는 상을 여읜다는 생각도 버리고 번뇌의 옷을 입고 바깥의 음악이 아닌 오직 자기 체화에서 저절로 나온 리듬에 춤을 추어본 일이 있으십니까?

강원에 오니 여러 가지 마음이 부딪쳐 크고 작은 소리가 납니다.

불성은 자꾸 가려지고 우리 안에 신화로 존재하는 불성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전 언제부터인가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집착으로 제 못난 마음을 붙들고 있어 더 앞으로 갈수도 없었습니다. 움츠려들기 시작하니 세상은 정말로 험난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나라는 상은 타인을 돕는게아니라 간섭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관심도 무서웠고 실제하는 것처럼 보이는 허망함은 저를 극한으로 몰아가기도 했습니다.

연금술사란 책에서 그 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지상의 모든 인간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보물이 있어. 그런데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그 보물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아. 그리고는 인생이 각자의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거야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의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을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은 험난한 것으로 변하는 거야’

신화. 내 밖에 다른 신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이 부처요 신이라는 걸 그릇된 견해로 덮여있는 저에게는 알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업장이니 사견이라고 하는 것도 내가 보려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지 실제하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내 안의 나에게 물어봅니다. 정말 그 안의 것이 확실하다면 불구덩이에라도 들어 갈 수 있니?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그런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 전에는 무심 했던 일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몽우리가 부풀어 올라 봄을 기다리는 소리, 나뭇가지에 맺힌 물에 비친 반짝이는 세상, 다 비워낸 투명함, 지나가는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부처님,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 마음속에 말만 하면 이루어지는 소원, 바람이 가져온 소식“다 잘 있어”

“저 사람은 왜 저래?” 에서 잠시나마 그 상대방이 되어보고자 귀를 열어봅니다. 물론 안 될 때도 있고 마음이 일어났다가도 사라지는 그 순간이 모두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 모두 부처님, 여친불 덕우불 도경불입니다. 많이 부끄러운 제 차례법문을 경청해주신 대중스님들 감사합니다. 매서운 추위만큼 야물어지는 매화처럼 대중스님들의 정진도 다부지게 익어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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