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_법수下 스님

가람지기 | 2011.04.11 16:17 | 조회 3264




나는 지금 어디에?



의혹을 넘어서고 고뇌를 이기고 열반을 즐기며 탐욕을 버리고 신들을 표함한 온 세계를 이기는 사람을 “도의 승리자” 라고 합니다.

가장 으뜸가는 것을 알고 법을 설하고 판별하는 사람, 의혹을 버리고 동요하지 않는 성인을 둘째로 “도를 말하는 사람” 이라 합니다.

도의 말씀에 의지해 살면서 절재하고 깊이 생각해 잘못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셋째로 “도에 의해 사는 사람” 이라 합니다.

계율을 잘 지키는 척 하지만 고집 세고 가문을 더럽히며 말 많고 잘난체 하는 사람을 가리켜 “도를 더럽히는 사람” 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부처님이 대장장이 춘다에게 말씀하셨던 네 부류의 수행자에 관한 글입니다.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 수행자일까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도를 더럽히는 부류에서는 빠져 나왔는지 아니면 아직도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는지, 열심히 노력은 하고 있는지,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법수下입니다.
세월은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역시 흘러가고 맙니다. 전혀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치문이 지나고 사집을 맞이해서 이렇게 차례법문 차례가 되어 법상에 올라앉으니 조금은 실감이 납니다.

먼저 항상 실수연발 사고만 치고 다니던 저희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쪽 눈 감고 지켜보고 감싸 준 상반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고뭉치 치문반이였지만 그래도 서로를 위하고 아픈 스님들이 생기면 서로서로 도와가는 우리반 스님들이 있어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치문을 무사히 잘 지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치문반 스님들도 갈팡질팡 헤매면서 힘들겠지만 그래도 인내하고 잘 살아주길 기도합니다.

저는 차서상으로도 아시겠지만 늦깍이 출가자입니다. 오랜 세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는 나를 느꼈습니다. 그때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 우두커니라도 앉아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더 나아가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이 발원이는 이루어지나 봅니다. 그런 원을 세우니 출가 인연을 맺게 되는 기도처를 찾게 되었고 그곳 주지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절에 다니면서 기도하던 중 스님께서는 다 놓아 버리고 3년기도 한번 해보라 권하셨고 놓을 것도 없는 살림살이 다 정리하고 스님의 주선으로 비구스님 선방이 있는 절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곳의 주지스님은 저를 소개 시켜주신 스님의 동생스님이셨습니다. 스님은 기도하면서 틈틈이 절의 작은 일들을 거들어 달라 하셨습니다.

3시에 일어나 9시에 자야하는 절집의 생활이 너무 익숙치 않아 힘이 들었고 아무리 간단한 절집 일이라도 나에겐 쉽지만은 않은 일이였습니다. 그렇게 서툴게 서툴게 지내면서 도저히 삼년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망가야겠다. 나를 이곳으로 보내준 스님께 전화하자. 그런데 그 마음을 알아차리신 건지 주지스님이 저에게 곧 동안거가 시작될텐데 해제때까지 공양주 보살님 옆에서 일을 도와달라 하셨습니다.

속으론 “아이코, 어떻게 아셨지?” 하며 놀랐지만 곧 “알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렇게 새벽 도량석이 올라가면 눈비비고 나와 새벽예불하고 잠시 쉬었다가 후원에 나가 빨주노초 파프리카를 썰어가며 스님들 시봉하는 보살님을 시봉하였습니다. 그 덕에 지금은 학장스님을 시봉하고 있는 찬시자 스님을 시봉하고 있습니다.

동안거 동안 열심히 참선하고 열심히 운력하고 열심히 포행하시는 스님들을 보면서 저절로 신심이 났고 여법한 스님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힘들게 정진하는 모습에 왜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하며 안타깝기도 했구요. 그렇게 신심나서 웃기도 하고 힘들어서 짜증도 내가면서 동안거를 지내고 있는 동안에 주지스님의 프로젝트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보살님, 앞으로 어떻게 살꺼야? 계획 있어요?” “글쎄요, 무엇을 해야할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가 좋은 사람 소개시켜 줄게 시집갈래요?”

“아이쿠 스님, 왜 이러세요. 남사시럽게...” “그래? 그럼 머리 깍을까?” “아니 스님, 이 나이에 무슨 출가를 해요.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힘든데요.” “그래? 잘 생각해봐요.” 이러면서 오다가다 만날라 치면 보살님 시집갈래, 출가할래? 하시며 동안거 동안 저를 괴롭히셨습니다. 저는 그런 주지스님을 만날라 치면 얼른 자리를 피했습니다. 피하면서도 법당에서 기도할 때에는 부처님께 정말 제가 가야 할 길이 어딘지 여쭤 봤습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제게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이 생에 깨닫겠다는 생각은 말고 다음 생의 인연의 터전을 마련해 본다 생각하고 출가해 보라고...”

그 말씀에 용기를 내서 저는 저의 은사스님과 인연을 맺어서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늦게 발심했고 부처님이란 단어만 알았지 기본지식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그렇게 출가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렇게 운문사에서 1년을 보냈고 사집을 맞이했습니다.

운문사에 오는 첫날, 저의 은사스님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드렸을 때 저의 스님은 저에게 “다른 스님의 안 좋은 모습이나 잘못된 행동이 눈에 들어오면 그 모습이 너의 모습이라 생각하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 이 한 말씀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제 생각이 옳다라는 생각 속에서 도반 스님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혀에 칼을 세워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봐야 하는데 아무런 사심이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남의 안 좋은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모습이 내 모습이었고 실수하는 행동을 보았을 때 그 행동이 나의 모습이었던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결국 모든 원인과 결과는 밖이 아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바깥만 탓하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런 내 자신이 참으로 싫은 날이였습니다. 내 허물보다는 남의 허물이 눈에 들어와 그 허물을 보면서 남탓만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을 한심스러워하며 옆에 있는 도반스님에게 제 마음을 얘기했더니 자기 은사스님이 자신에게 해주셨던 말씀을 해줬습니다. “항상 불가능한 일을 하지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무엇이 불가능한 일이냐? 타인의 생각과 관념을 바꾸려 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무엇이 가능한 일이냐? 나의 생각과 관념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한 일을 하려하지 말고 모든 가능한 일을 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래 맞아 정말 맞는 말씀이야. 그래 명심하자.” 하지만 돌아서서는 다른 행동을 하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아직은 초심자인 저로서는 뾰족하고 모난 저의 성격이 둥글고 원만해 지는 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처님 법대로 살려 노력하다보면 부처님이란 세자밖에 몰랐던 내가 그래도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조금이라도 알아서 행동하려 노력할 것이고 밖의 탓으로만 돌렸던 그 마음을 돌려 나를 키우는 법수가 언젠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치문때 배웠던 명교 숭선사 존승편에 나오는 내용 중 다시 한번 되집어 보고픈 글이 있어 이 글을 끝으로 저의 법문은 끝을 맺을까 합니다.


實相待物하며 以至慈修己하라.

있는 그대로 타인을 (대우하며) 바라보며 내 자신을 지극한 자비로써 수행하라.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