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이곳에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_선지 스님

가람지기 | 2011.04.11 16:29 | 조회 3707




이곳에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선지입니다.

제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당신은 왜 당신입니까?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왜 나일까? 왜 여기 있는 것이지?”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습니다. 학교 졸업 후 병원에서 일했습니다. 날마다 생사를 마주했습니다. “죽은 후에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의 몸은 한 줌 재로 화하고 우리가 가진 영혼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런 질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철학, 심리학, 심리요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매우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인생에 대한 책을 계속 찾아보았습니다. 그 중, “티베트, 사자의 서”라는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후에 부처님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초발심”은 마치도 에너지를 주는 충전기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고, 죽은 자를 위해 “옴 마니 반메 훔”이나 “아미타경”을 염불했습니다. 염불을 할 때마다 매우 편안하여 만족감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죽어가는 불자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누구든지 빈손으로 오고 빈손으로 가요. 이제 스스로 도와야 할 때가 왔어요. 오직 마음속에 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청정하고 밝은 빛만 따르시면 좋은 곳으로 가실 겁니다.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약속할게요. 오늘 밤 집에 돌아가 당신을 위해 염불할게요.” 다음 날 아침 그 환자는 먼 길을 떠났습니다.

2001년 홍콩에 있는 선 법회에서 처음 숭산 큰스님을 만났습니다. 작지만 강단이 있고 회색 장삼과 갈색 가사를 가슴에 두르고 법당에 들어오신 분은 숭산 큰스님이셨습니다. 그분에게서 특별하고 강한 움직임 없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얼굴이 너무 청정하고 밝아서 제 마음이 다 평화로워졌습니다. 이것이 잊을 수 없는 큰스님의 첫인상이었습니다. 그날 큰스님의 책을 사 와서 읽어나갔습니다. 책 중 하나가 매우 흥미로웠는데, 그것은 숭산 큰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생각 이전으로 돌아가서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구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곧 내 인생의 의미가 됐습니다.

2004년부터 2년 동안 홍콩에서 행자 생활을 했고, 은사스님이 한국불교를 배우라고 말씀하셔서 한국에서 다시 2년간 행자 생활을 마치고 사미니계를 받았습니다. 제 은사스님은 홍콩 분이시고 지금 홍콩에서 사십니다. 일단 인연으로 숭산 큰스님을 20년 전에 만나신 제 은사스님은 그에게서 법을 전해 받으셨으며, 홍콩에서 한국 선원을 일구어내셨습니다.

솔직히 4년 동안 행자를 시키고 혼자 한국에 보내 온갖 어려움을 겪게 한 스님께 서운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독립심을 배웠습니다.

4년 동안 행자를 했을 때 언제 사미니계를 받을지 고민할 때 은사스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봄이 오면 풀은 절로 자란다.” 어느 강원에 갈지 여쭈었을 때도, “모든 강원을 가보고 네 마음이 맞는 곳으로 가면 된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치문반부터 그만두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한 때 은사스님께 그만둔다고 전화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은사스님께서는, “왜 네가 운문사를 택했는지 기억해라. 그곳이 왜 끌리었는지?”라고 물었습니다.

은사스님은 운문사의 생활에 대해 거의 물으신 적이 없습니다. 저도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한번 홍콩에 갔을 때, 은사스님께서 선문답실에서, “질문 있나요?”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전 울면서 한 스님과 어떻게 잘 지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친구가 되고 싶지만 언제나 화난 얼굴로 저를 무시합니다. 그 스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왜 그리 쉽게 우느냐? 무시해 버려라. 그러면서 또한 수행 정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 업을 무시해 버리겠습니까? 저는 해결 방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때부터 그 스님이 생각날 때마다 자비경 염불을 했습니다.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로 이것이 숭산 큰스님의 가르침입니다. -따지지 말라. 오직 할 뿐!!

은사스님으로부터 숭산 큰스님의 많은 일화를 들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포교를 할 때 어느 날, 코끼리를 보고 큰스님께서 물었습니다. “너에게 불성이 있느냐? 이 몸에 집착하지 말고 후생에는 사람 몸을 받아 불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여라. 여기 너를 위해 귀의삼보 하옵나니.” 그 소리를 듣고 코끼리는 눈물을 흘리며 큰스님께 삼배를 올렸다고 은사스님이 전해주셨습니다.

저도 숭산 큰스님처럼 개나 고양이와 대화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느 때인가 개에게, “너에게 불성이 있니?”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 개는 제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운문사 삼성각 부전을 살았을 때, 고양이가 문 앞에 앉아 있어 제가 쫓아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잘못했구나’ 금새 뉘우쳤습니다. 왜냐하면 고양이를 들어오게 한 후, 부처님께 함께 예배하고, “네게 불성이 있니?” 하고 물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바로 그때, 그 고양이가 다시 나타나 야옹, 야옹,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처님과 숭산 큰스님, 그리고 은사스님을 따릅니다. 오직 불법만이 바른길로 인도하리라 믿습니다. 2004년 숭산 큰스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에 화계사에서 큰스님을 다시 뵐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

이 질문이 큰스님이 저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이셨습니다. 이제 여러분께 드리는 제 선물입니다.

성불하십시오.


** 선지스님은 홍콩의 수봉선원(秀峰禪院)의 향음(香音)스님을 은사스님으로 2004년 삭발염의했습니다. 한국불교의 간화선을 배우기 위해 유학왔으며, 현재는 운문사 강원의 사교과에 재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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