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마음 내려놓기_선운스님

가람지기 | 2011.07.08 11:08 | 조회 3824



마음 내려놓기

푸른 나뭇잎들은 더욱 푸르게 빛이 나고 대지는 한 여름으로 가는 열기로 더욱 뜨거워지는 시점에 차례 법문을 하게 된 사집반 선운입니다.

대중 스님들, 안녕하십니까?
절집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 무엇인가요?
‘하심’이라는 말이 아닌가요. ‘아래 하’에 ‘마음 심’, 나의 마음을 내려놓아 가장 아래쪽에 두는 것, 내 마음을 낮추어 남을 공경하고 뜻을 겸손히 가져 화합하는 삶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스님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절집 생활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출가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은사스님과 부딪치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은사스님께서는 저에게 ‘하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면 ‘하심, 하심, 하심......’ 입으로 머리로 되뇌어 보지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원에 들어와 힘든 치문 첫 철을 보내고 난 후 남는 봄 방학 중에 후원의 상채공 소임을 살게 되었습니다.

먼저 제 음식 솜씨가 어떤지 간단히 소개드리곘습니다.
본절에 있을 때였습니다. 절에 와서 난생 처음 보는 아욱으로 국을 끓이라고 하시면서, 된장 고추장 풀은 채수물에 넣기 전에 메메 치대라고 하셔서 설명해 주신대로 열심히 치대서 국에 넣고 끓였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죠. 국이 끓자마자 일반 국처럼 조금 더 끓여서 상에 올려놓았습니다.

대중 스님들, 상상이 가십니까? 아욱이 살아서 밭으로 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두 번째 국을 끓일 때는 저번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오래 오래 끓였습니다. 국이 아니고 죽이 되어버렸습니다. 세 번째로 끓였을 때는 처음부터 국물량을 많이 잡아서 끓였습니다. 이번에는 간이 문제였습니다. 싱겁다고 계속해서 간을 하다보니 너무 짜서 맹물로 희석해서 먹어야 했습니다.

이런 제가 상채공으로 처음 대중국을 끓여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어서 잠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파트 상채공 스님, 도반스님들 중에 음식 잘하는 스님을 수소문해서 여러 가지 국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일일이 메모를 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국을 끓였습니다.
맛없다고 먹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속에서 대중 스님들 공양을 지켜보았습니다. 맛있게 잘 끓였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물론 대부분 도반스님이었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강원에 오기 전까지 솔직히 음식을 잘 못한다는 생각에 잘 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또 잘못하면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잘 하는 사람에게 물어서라도 해보려는 노력을 해야 되는데 제 자신이 잘 못하는 것을 보여주기 싫어 억지로 버티다 보니 은사스님이나 상반스님이나 도반스님들과 부딪히는 이리 많지 않았나 봅니다.

상채공 소임은 제 자신뿐아니라 주변까지 되돌아 보고 둘러보는 계기가 되었고 남보다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더 많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강원 생활과 본절에서의 생활이 전처럼 힘들지 않았습니다. 힘이 들어도 버틸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힘든 치문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건강한 땀방울을 흘리며 대중스님들의 찬상을 푸르게 하는 푸성귀를 가꾸고 갈기고 있습니다.

하심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제가 애써 외면한 것 뿐이었습니다.

대중 스님들, 야운 스님의『자경문』에

人我山崩處(인아산붕처) ; 나다 너다 하는 상이 무너지면
無爲道自成(무위도자성) ; 위없는 도가 저절로 이루어지며
凡有下心者(범유하심자) ; 두루 하심을 잘 하는 사람에게는
萬福自歸依(만복자귀의) ; 온갖 복이 저절로 돌아오느니라

‘이 게송에 보듯이 하심을 잘 하는 사람에게 복이 저절로 온다고 합니다.
하심이라고 인정하면 그것이 하심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이 없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에서 드러날 때 진정한 하심입니다.
성불하십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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