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출가동기_일조스님

가람지기 | 2011.10.26 18:37 | 조회 4150


 

출가동기

 

안녕하세요. 높은 법상에 앉아 어른스님들 앞에 차례 법문을 해야 한다니, 떨리고 가슴이 벅차 기쁘기도 하고 긴장이 됩니다. 저같은 경우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부처님 법도 잘모르고 그렇다고 여기저기 큰 스님들은 찾아다니며 법문을 들은적도 없으며 또한 경전을 가까이 접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저같은 사람도 이렇게 높은 법상에 앉아 법문을 할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차라리 포기 할까 하는 생각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안되고 연택의 여지가 없어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제가 어디가서 이렇게 법문할수 있겠는가 생각했습니다. 식상하지만 어쩔수 없이 저의 출가 동기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태어난곳은 서울이지만 서울에서 살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저는 외가집이 전라도 땅끝 해남옆 강진이 외가집이고 저의 거주사가 있는 곳입니다.

어렸을때는 외가 집에서 많이 살았습니다.

외할머니와 같이 절에도 자주 가고 할머니 심부름으로 중고등 학교때에는 혼자서 절을 종종 찾았습니다.

그런데 전 절에 가서도 부처님 계신 법당에는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처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제가 초등학교 2~3년때인가 한번은 저의 절에 모셔져있는 서가모니 부처님은 목불이신데 (지금 문화제로 등록 되어있습니다) 손이 분리가 됩니다. 어렸을때는 법당에서 놀다가 호기심에 부처님 손을 빼서 놀았습니다. 지금 은사스님과 노스님께 들켜서 정말 많이 혼났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맞은 기억은 없는데 저의 절은 완전 산중인데 저를 깜깜한 산에 나무에 묶어놓고 스님은 가버렸습니다. 한참을 혼자 울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니까 끈이 풀리더라구요 그래서 들어가면 다시 혼날까봐 그냥 조용히 절 마루밑에 들어가 숨어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이쯤되면 두 번다시 그러지 않겠지 하고 저를 데리러 갔는데 제가 없어져 버린 겁니다. 스님은 제가 산짐승에게 물려간줄 알고 산아래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저를 찾아 헤멨는데 못찾고 스님혼자 절로 돌아와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마루 밑에서 부르럭 소리가 들렸답니다. 컴컴한데 들여다 보니까 제가 그기서 자고 있더랍니다. 처음에는 맞지 않았는데 그때는 회초리로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답니다. 죽도록 맞았습니다. 그후로 절에 가면 부처님 계신 법당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그쪽은 처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부처님 때문에 제가 맞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때는 정말 부처님이 미웠어요.

이렇게 중이 제가 중이 되려고 그랬는지 저는 7남매중 여섯째인데 저혼자만 시골 외가집에 살았습니다.

외 할머니는 집과 절중 일년에 반 이상은 절에서 사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리도 피해다니던 절을 저도 할머니와 똑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3때 까지 정말 잘나가는 운동선수 였습니다. 운명은 저를 그냥 놔두지 않았습니다. 하루 아침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때 교통사고로 일년을 병원에서 살았습니다. 운동은 더 이상 할수 없었고 그때부터 방황에 늪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잊어버릴 만하면 절에 들려서 스님 안부만 묻고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스님은 궂이 제 연락처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간혹 넌 항상 내손안에 있다 어딜가나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용돈은 두둑히 주셨습니다. (철이 없을땐 돈이 필요하면 절에 갔습니다)그때도 그러셨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계신 스님들 께서는 스스로 부처님 법이 좋고 발심해서 출가 하셨을 겁니다. 전 강제로 출가 했습니다. 아니 출가 시켰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한번은 은사스님 께서 일조야 부산에 한번 다니러 가자 큰스님도 뵙고 겸사 겸사 다녀오자 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부터 보아온 스님이 한분 계십니다. 저는 그때는 그런줄로만 알고 뵌 지도 오래됐고 해서 따라갔지요 그런데 그날이 제가 삭발하는 날이었습니다. 제나이 21살 때 였지요. 그전에도 삭발만 하자하면 도망가서 연락두절 몇 개월에서 몇 년씩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왠지 스님의 눈빛을 보니까 해야 될것만 같았습니다. 그러기를 몇 번을 출가아닌 가출을 하고 그러다 다시 스님에게 끌려 가곤 했습니다. 그러기를 강산이 두 번이나 넘게 바뀌었네요 정말 제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느낌이 와 닿았습니다.

몇 년 만에 뵈서 인지 몰라도 제 은사스님께서 정말 야위어 보였습니다 그날도 자고 가란 말씀 뒤로 하고 그냥 나왔는데 여느때와는 달리 너무 마음 무겁고 죄스럽고 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니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제 됐다 그만 들어오너라 하시는데 외그렇게 쓸쓸해 보였는지 너무나도 긴 시간을 방황했던 제 자신이 너무 미웠습니다. 항상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내 원은 니가 빨리 제데로 출가해서 부처님 법을 따르고 수행 정진하는게 원이라 하쎴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방황하자 스님의 원을 들어 드리자 해서 계를 받았는데 이게 다가 아니였습니다. 전 그때 까지만 해도 계만 받으면 다 인줄 알았습니다.사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행자 교육 경력은 세 번씩이나 되는 사고 뭉치 였지요 그런데 계를 받고 나니까 강원은 다녀 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죽어도 강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몇 달을 설득 하시더라구요 달래도 보고 윽박지르기도하고 하시더니 그냥 갖다와도 좋으니까 일단 한번 갔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또한 그냥 갈 요량으로 스님이 하도 그러셔서 정말 스님께 효도 한다 하는 생각으로 여기 운문사에 왔습니다. 그런데 첫철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첫철 소임이 정두 였는데 청소하다 미끄러져 다리를 다쳤습니다. 다리 치료 때문에 장기 출타갔을 때 은사 스님께서 힘들면 가지 않아도 된다 하셨습니다. 저도 포기 했습니다. 그런데 포기 하고나니까 왜 그렇게 반스님들이 보고 싶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용기를 냈습니다. 제겐 꿈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꿈은 운문사 치문 사집 사교 화엄 까지 우리반 스님들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운문사를 졸업하고 구족계받고 은사스님 모시고 천사같은 광이와 부처님법 따르고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치문반 스님들께 너무너무 고맙다는 말 하고 싶습니다.

자기몸 추스르기도 힘든 치문 첫철에 자신보다 도반 배려 해줄줄 아는 우리반 스님들 얼마나 감사한줄 모릅니다. 제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신 대중 스님들께 감사의 인사 드리며 저를 어르고 달래며 여기 이곳 운문사 강원으로 보내주신 은사스님의 깊은뜻 잘 받들어 정진 하겠으며 은사스님의 빠른 쾌유를 부처님전에 빌며 저의 차례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대중 스님들 성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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