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죽음 준비하기_현우스님

가람지기 | 2011.10.26 18:49 | 조회 4799


죽음 준비하기

 

안녕하세요, 사집반 현우입니다.

생사대사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불교에서는 생사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생사대사를 해결하면, 죽음도 삶도 없는 자유로운 경지입니다. 그럴 때는 “나, 간다”, 그러면서 자유자재하게 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아직 생사보다는 식사가 더 대사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수행자로서 보기 흉하지 않게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또한 쉽지 않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예전엔 없던 죽음이 많습니다. 자동차 사고, 의료사고 등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기계 장치에 의존해서 생명을 유지하거나, 암이나 에이즈 등 치명적 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수행자라고 예외가 아니겠지요.

여러분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나 병으로 심각하게 뇌에 손상을 입거나 회복될 가망성도 없이 기계장치에 의지해서 단지 숨만 쉬고 있는 상태를 상상해보십시오.... 그런 모습으로 죽는 것을 바라진 않으실 겁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인공 호흡기를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퇴원도 안됩니다. 의사가 살인 방조죄 등으로 잡혀갑니다. 어떤 상태에 있던 생명은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사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일단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기계 장치에 의지해서 식물인간 상태로 살아 있어야 했습니다. 2009년에 <김할머니의 판례>가 있었습니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오랫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할머니를 가족이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고, 이겼습니다. 할머니가 ‘난 기계에 의지해 살아 있기 싫다’ 라고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평상시 언행으로 그러실 거라고 추정해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해드린 겁니다.

살아 있는 생명은 누구나 계속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불살생계가 가장 첫 번째 계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오면서 그냥 숨을 쉬고 심장이 뛰면 살아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존엄사를 주장하는 사람은 살 권리만큼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사회에서 존엄사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 본인의 의사를 미리 확실히 밝혀놓으면, 김 할머니의 경우처럼, 원하지 않는 형태의 삶을 중단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미리 준비해두어야 합니다.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전 유서입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미리 유서를 써두는 겁니다. 재산을 이렇게 나누고 저렇게 나누고.... 가 아니라, 원치 않는 형태의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고 미리 선언해 두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 라고 합니다. 예제를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

제가 병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할 경우를 대비하여 저의 가족 친척 그리고 저의 치료를 맡고 있는 분들께 다음과 같은 저의 희망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이 선언서는 저의 정신이 아직 온전한 상태에 있을 때 적어 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저의 정신이 온전할 때에는 이 선언서를 파기 할 수도 있겠지만 철회 하겠다는 문서를 재차 작성하지 않는 한 유효 합니다.

(1) 저의 병이 현대의학으로 치료 할 수 없고 곧 죽음이 임박 하리라는 진단을 받은 경우 죽는 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한 연명 조치는 일체 거부합니다.

(2) 다만 그런 경우 저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죽음을 일찍 맞는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3) 제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명조치를 중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저의 선언서를 통해 제가 바라는 사항을 충실하게 실행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저의 요청에 따라 진행된 모든 행위의 책임은 저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200 년 월 일

본인 성명

가족 성명

공증인 성명

 

 

우린 원치 않아도 늙고 원치 않아도 죽습니다. 먼저 왔다고 먼저 가지도 않고, 나중에 왔다고 나중에 가지도 않습니다. 죽는 순간 평생 살아온 삶의 결과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증일아함의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그대들도 이렇게 드나드는 호흡지간에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수행해야 생로병사와 근심, 걱정, 고통, 번민에서 헤어날 수 있을 것이다. (증일아함 35권, 칠일품 제 8경)

대중스님 여러분, 아름다운 끝을 위해 정진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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