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선우스님

가람지기 | 2011.10.26 18:56 | 조회 3241


 

대중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선우입니다.

짙푸르던 여름이 지나고 들녘에는 장마와 가뭄을 잘 인내한 황금빛 곡식들로 수놓이고 있습니다. 여기 호거산운문사의 산천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아름답게 물들어 갑니다.

그야말로 자연과 생명에게 더 없이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계절입니다.

대중여러분 자연과 시간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한순간도 조용함 없이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특히 고요하고 조용한 하루가 지나가는 이 곳 운문사 안에서의 첫날부터 지금까지 처음 겪는 일상들을 대하며 끊임없이 시시비비를云云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제는 훈습과 경책이란 단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줄 아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체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했거늘 머리로는 그 말을 이해하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아직 가슴으로 흠뻑 받아들이지 못함은 어찌해야 할까요?
 

우리들은 누구나 남과 시비하고 경쟁하기보다는 화해하고 너그럽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막상 일상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남이 자기를 이해해 주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은 오히려 남에게 인색하고,
자신은 타인을 섭섭하게 하면서도 다른 이가 자기를 그렇게 대하면 참지 못합니다.

행복한 삶을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순간 순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것이지요.
이러한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서 저는 늘 자신을 되돌아 보려 노력합니다.
나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늘 점검해서 어긋나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 공부가 아닐런지요.

조사 스님들은 모름지기 수행자는 ‘자기 발밑을 잘 살펴라’(照顧脚下)고 하셨습니다.

밖이 아니라 자기 내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모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다른 것에 정신을 두지 말고, 남의 잘잘못을 보고 시비를 일삼지 말고 자기를 되돌아볼 줄 아는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일은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속성이기 때문에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고 반성하며

허물이 있다면 그것을 고치려고 계속하다보면 거울에 비친 모습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당나라 때 유명한 문장가이자 높은 벼슬아치였던 백낙천과 조과 선사의 재미난 이야기

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백낙천이 조과 선사를 찾아왔습니다. 선사는 높은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어 놓고는 거기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백낙천이 “스님 위험합니다. 얼른 내려 오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오히려 땅에 서 있는 백낙천에게 “허허, 내 눈엔 자네가 더 위험한 곳에 서 있는 것 같네 그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백낙천에게 아만이 가득차면 자기를 돌아볼 수 없음을 말해 주었던 것입니다. 위만 쳐다보며 자신의 발밑이 무너지고 있는 것도, 자신의 내부가 썩어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사소한 남의 흠만 보게 됩니다. 여기서 온갖 원망과 갈등이 싹틉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은 비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화하는 수행입니다.

그래도 이젠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내 주위에 나에게 이런저런 감정들이 불쑥불쑥 일어나도록 자극을 주는 사람들, 그러한 상황들, 그들은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 내가 배워야할 것들을 배우고 채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이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강원이라는 곳은 그 점에서 참으로 저에게 멋진 곳이였습니다. 언제 어느 회상에서 또 이렇게 나의 적나라함과 마주칠 수 있었겠습니까? 언제 또다시 이와 같이 내 주위 도반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의 한 단편임을 이렇게 절절히 느낄 수 있을런지요.

강원 4년 동안 선재동자가 만났던 53선지식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었고 일체유심조인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지옥이 되기도 하고 극락을 만들 수도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수행이란 적어도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사는 것이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모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행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나를 위해 서로를 위해 그리고 존재하는 모두에게 은혜를 갚아가는 과정인지 모르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가을의 오늘 고구정녕 당부하시고 당부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중생의 아픔을 함께 할 줄 아는 그리고 만물의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진정한 수행자로서 거듭나기를 간절히 다짐해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 여일하십시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