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의 태양,당신의 태양._선유스님

가람지기 | 2011.12.26 13:43 | 조회 3969


 

나의 태양,당신의 태양.

대교과 선유스님  
   

항상 차례법문이 끝나고 일찍 이부자리 하는 날이면, 지대방에 모여앉아,
막내가 차례법문하면 우리가 졸업할때라고, 언제 그날이 오겠냐며 얘기한게
엊그제 같은데 정말로 그날이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선유입니다.
난생처음 청심원이라는것을 먹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이시간동안 대중스님들에게 전하고싶은 저의 마음이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강원도에서 행자시절을 보낼때 주지스님을 따라 화원에 간적이있습니다.
화원 입구에는 새장이 많이 걸려있었습니다. 그 속에사는 작고 예쁜 새들을 보니, 문득 이 새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얘들도 분명 날기위해 날개를 가지고 태어났을텐데 평생 새장속에서 관상용으로 살아야한다는게 참 잔인한 일인것 같았습니다. 주인아저씨에게 새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했더니 아저씨가 웃으며 말하길 얘들은 풀어줘도 야생에서는 못살고 다시 돌아 온다며 새장속에 갇혀 살다 숲속으로 돌아가면 적응하지 못하고 죽기때문에 지금 이 새들에겐 오히려 새장이 편한곳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실이 제겐 충격이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새장속에 새들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새를 가둬두는것이 철창으로된 새장이라면 우리를 가둬두는것은 오래된 업으로 만들어진 관념입니다.

출가 사문으로 산다는것은 이런 업력을 뒤집고 관념을 버리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많은 부분 세속이 추구하는 바에 끄달려 살고있습니다. 마치 기꺼이 새장속에 갇혀있는 새처럼, 우리를 가두고 괴롭히는 고통의 근본이 이 관념임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관념에 익숙해져 기꺼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대중스님여러분들은 지금 새장속에 계십니까 새장밖에 계십니까, 혹 새장안에 계신다면 진실로 새장밖 세상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확신은 있으십니까? 없다는게 문제겠지요.

이 모든 문제의 시초는 '현실'이라는 가장 비현실적인 관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정불변한, 객관적인 현실이 있고 그 속에 자신이 던져져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실이 버겁고 괴롭고, 극단적으로는 소중한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세상 모든것은 주관과 무관한 객관이란 성립될수없습니다. 우리에게 '현실'이라는 배경을 만들어주는 시공간 마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들어 두사람이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시간에 약속장소에 먼저나온 사람과 미처 일이생겨 30분 늦게 약속장소로 출발한 사람의 시간은 분명다르게흐릅니다. 먼저나와 기다리는 사람의 30분은 불안함, 걱정,지루함으로 천천히 흐르고 늦게 나와 서둘러 가려는 사람의 30분은 미안함과 다급함으로 쏜살같이 지나갈것입니다. 이처럼 모든것이 나로부터 만들어집니다. 결국 나의생각과 마음이 시간과 공간, 그것이 이루는 현실, 즉 나의 세계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세계안에서 슬픔, 기쁨, 행복을 만들고 이것이 곧 나의 삶을 지배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현실이라는 관념을 제대로 정립해야할지에 대해 숭산큰스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이세계는 내가 만드는 세계입니다. 내가 좋은 세상을 만들면 나는 좋은 세상을 가지는 것이고 내가 나쁜세상을 만들면 나쁜세상을 가지게 되는것입니다.내가 여기 존재하면 이 세상은 내것이고 내가 없어지면 세상도 사라집니다.
내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저기에 여전히 뭔가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예를들어 내가 죽어도 하늘에 있는 태양은 없어지지않는데.. 라는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태양이 아닙니다.누군가의 태양입니다.누군가가 현재 보고있는 태양입니다.태양은 본래 존재하지 않습니다.우리가 태양을 만든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라지면 나의 태양도 사라집니다.내가 사라지면 모든것이 사라집니다.

매일아침 200개의 태양이 200개의 운문사를 비춥니다.
누군가에게는 말할수없이 환희롭고 감사한 세상이고 누군가에게는 담장밖만 바라봐도 눈물이 나는 괴로운 세상일수도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4년동안 저의 운문사는 한순간도 아름답지않은적이 없었습니다.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새벽예불을 모시러 대웅전으로 향하던 괴로운 그시간 제 머리위로는 항상 청색빛 새벽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버겁고 지치는 일상을 다 놔버리고싶어 펑펑울고있을때 제곁에는 이유도 묻지않고 함께 울어주는 도반스님이 있었습니다.

여기 운문사라는 세상을 가지고 계신 대중스님여러분,
자신의 관념에 갖혀 당신의 세상에서 정말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내일 아침 나의 태양도 당신의 태양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의 세상, 당신의 세상을 비추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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