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어리석은 공부(승무스님)

운문사 | 2005.12.26 13:13 | 조회 2905
오늘 어리석은 공부라는 주제를 가지고 법문을 하고자 합니다.


다람쥐 토끼가 뛰노는 산골토굴에서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전기도 없고 촛불을 켜고 생활했던 곳입니다. 스님들께서 토굴생활 하실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몇 자 적었습니다. 정진(기도)하다보면 정랑가는 것이 공부에 방해가 될 때가 있는데 소나무잎 몇 개를 찧어서 그 물 한두 방울을 쌀에 넣고 밥을 지어먹으면 이뇨작용 억제를 하기 때문에 정랑 자주 가는 번거로움을 덜어줍니다. 소나무잎 찧은 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변비에 걸리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넣고 많이 드시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이것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혼자 토굴생활 하실 때 밥은 조금 지어야 하고 불때는 아궁이에 걸어놓은 솥이 클 때 밥짓기가 어려우면 큰솥에 ⅓정도 물을 넣고 물에 잠길 정도의 돌멩이를 넣은 후 작은 냄비에 쌀을 앉혀서 큰솥에 넣고 불을 지피면 방도 따뜻해지고 밥도 되기 때문에 따로 밥을 짓지 않아도 됩니다.

기도를 마친 후 보살님이 다니는 절에 가보라 해서 큰스님께 화두를 받고 "마음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화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고양이 쥐잡듯이, 닭이 알 품듯이, 큰스님의 가르침대로 정진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화두만 들면 눈물, 콧물, 침이 계속 흘러나와 선방에서는 정진할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와 나무 밑에 앉아 정진하였습니다.

2월초라 춥기도 하고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아픔도 이기지 못하면 고통 속에 빠져있는 중생제도는 하지 못해.'라는 생각과 또 다른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해가 뜨고 날이 환하게 밝았을 즈음에 보살님이 저의 팔을 잡아당기다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꼼짝 않고 굳어버린 저의 팔을 당기다가 보살님의 어깨 근육이 늘어났던 것입니다. 보살님 두 분과 처사님 두 분이 오셔서 저의 팔다리를 한쪽씩 들고 욕실로 갔습니다. 반가부좌한 상태로 굳어버린 다리를 억지로 풀어서 씻겼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절대로 화두를 놓아서는 안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계속 정진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한구석에 보살님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조금은 보살님들에게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굳었던 몸이라 저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아서 보살님들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는데 따뜻한 죽을 보살님이 먹여 주셨습니다. 화두도 들지 말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어나서 큰스님을 뵈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24시간을 생각의 집을 짓고 있었다. 공부란 정확히 보고 듣되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인데 생각으로 생각으로 집을 지어 생각의 마구니에 속아 큰일날 뻔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생각만 살아있었고 육신은 굳어갔던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 바다에서 무엇을 건졌는데 그것을 먹어보니 맛이 좋아서 말려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름을 붙여야 되는데 이름을 몰라서 이것을 채취한 사람이 김씨라서 그때부터 '김'이라 불렀다 합니다. 만약 이 사람이 박씨였다면 박이고 장씨였다면 장으로 지었겠지요. 삼라만상이 단지 우리가 편리하기 위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이거다 저거다 고정관념을 깨지 않으면 마음을 밝힐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선지식 만나 마음 공부하실 때 저처럼 자기 생각에 빠져서 어리석은 공부하지 마시고 아집을 버리고 '활구 참선법'으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치문』에 「주위빈사문망명법사식심명」에 보면


맑은 하늘이 깨끗함을 부끄러워함이요,

해가 밝음을 부끄러워함이라.

단정히 나무그늘에 앉으면

자취가 멸하고 그림자가 없어지니라.


우리가 맑다고 하는 하늘과 밝다고 하는 해조차도 자성 앞에서는 부끄럽고 한 마음 쉬는 것이 천지를 얻음이라 하셨습니다. 여름방학 개학 후 아침 발우시간이 끝날 무렵 한줄기 감로의 법문이 들렸습니다.

"한 마디 하겠는데 좀 떠들지마. 왜 그렇게 떠드는지 모르겠어."

때와 장소를 개의치 않고 학인들을 가르치시는 학감스님의 말씀이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처럼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다음날 오전 요가수업이 있었는데 요가선생님께서

"스님들께서는 조용히 계시기 때문에 운동을 많이 하셔야 합니다."

스님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요가선생님이 왜 웃으시냐고 물으시니 한바탕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학감스님의 말씀처럼 각자의 모습을 비추어보면서 웃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생각 생각이 번뇌라 하셨는데 살얼음 걷듯이 자기 모습을 살피지 아니하면 세월이 흐른 뒤에는 나태해져서 '이렇게 힘든 참선을 해야하나, 찾아도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나의 마음자리 그냥그냥 편하게 살다가 신도관리나 하고 살면 되지'하며 마음 찾는 길은 천리만리에 있는 듯이 생각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시간과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고 이 몸 다시 받기 더더욱 어렵다 하였으니 바쁜 생활속에서라도 잠깐 잠깐의 시간이라도 마음 찾는 공부를 지어나갔으면 합니다.


곳곳이 망상이요, 쌓인 것이 번뇌지만

대장부 어디간들 금생해탈 못하리요.

나무아미타불.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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