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석 탑 (수현스님)

운문사 | 2005.12.26 13:14 | 조회 2789

어느덧 치문반 겨울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긴장으로 점철되었던 첫 철, 다소나마 여유를 가졌던 여름철, 가을철을 지내면서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지만, 특히 조석예불을 마치고, 금당불빛에 비쳐 아름답게 서 있는 석탑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법문보다도 그윽하게 다가왔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기에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저의 주제는 간략하나마 석탑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석탑의 나라'로서 널리 알려져 왔습니다. 우리 선인들은 희고 견고한 화강암을 주재로 삼아서 석탑을 조성하였는데, 이 같은 화강암재는 우리나라 도처에서 생산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연의 혜택을 가장 먼저 받은 것이 불교라 하겠으니, 그 까닭은 불교에서의 예배대상은 탑파와 불상으로써 모두 이 같은 화강암으로 조형함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 발생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엽으로 잡아서 대략 삼국시대 발기로 추정됩니다. 삼국에의 불교전래는 나라마다 여러 가지 여건이 다르기도 하였지만 백제와 신라는 그다지 큰 연차가 없이 대략 600년경에 이르러 양국 모두가 석재를 이용하여 탑과 불상을 조형하였습니다. 같은 석재라 하더라도, 백제에서는 화강암을, 신라에서는 안산암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화강암을 가장 앞서 사용하여 그것으로 석탑을 건립한 사실에 있어서는 백제가 그 시초였다고 말할 수 있겠으며, 이 같은 사실이 우리나라 석탑의 발생국으로서 백제를 가리키는 까닭입니다.

백제에서의 석탑양식은 곧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이 됩니다. 물론 석탑 건립에 앞서서 주로 목탑이 유행하였습니다. 초기의 목탑은 삼국을 통하여 모두 누각형식을 따랐으며 이 같은 형식은 아마도 중국의 조형을 따랐던 것으로서, 불교의 처음 전래국인 고구려에 있어서 뿐 아니라 백제나 신라 등 삼국이 동일하였던 것 같습니다. 신라에 있어서는 불교가 가장 높게 전달되었지만 그 시초부터 가람과 석탑의 건립은 가장 왕성하였습니다. 삼국 말 7세기 초엽에 이르러 경주 황룡사에 건립된 9층목탑은 일찍이 우리나라에 세워진 탑 중에서 최고 최대였을 뿐 아니라 동양의 불교국을 통해서도 유수한 대탑이었습니다. 이 대탑은 삼국통일의 염원 아래 이루어졌는데, 백제의 아비지가 초빙되어 이 큰 역할을 담당하여 목탑을 건립하였고, 고려말에 이르러 몽고난에 불타버렸는데, 이 대탑의 수호에는 호국사상이 깃들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목탑을 든 까닭은 석탑이 목탑양식을 본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석탑은 삼국 말 600년경에 이르러 비로소 백제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백제의 남다른 건축술의 발달, 황룡사 9층탑의 건립을 위한 아비지의 관여, 일본 초기사원의 창립을 위한 장인들이 도법(渡法)한 역사적 사실들이 백제에서의 사탑건립의 융성과 그로 말미암은 석조미술의 발생 배경을 짐작케 합니다.

삼국 말 7세기 전반에 이르러 한국 석탑의 전형을 얻게 되었으니, 그 같은 계기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입니다. 삼국통일은 비단 국토와 국민의 통합과 융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문화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고루 미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심한 석재를 가지고 조성된 석탑에 있어서도 한국 석탑의 양식은 역사와 문화를 따라서 변천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불교 그 자체의 성쇠로 반영하고 그 믿음을 구현한 사실은 다시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으로는 <감은사지 동서 3층석탑>과 김대성이 전세부모를 위하여 창건한 <불국사의 삼층석탑(석가탑과 다보탑)>, <토함산의 석굴암 조성>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라의 석탑은 나라와 국가의 믿음과 염원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10세기에 들어서 고려 왕조가 들어서면서 새롭게 결집된 국력은 불교사원의 건립에 집중되었고, 개경에 7층탑, 서경에 9층탑, 경주에서는 <황룡사 대탑>을 보호함으로써 국가수호의 염원을 이 같은 불력의 가호에서 얻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조선왕조 초기까지 미쳤는데 임진왜란에 심한 재화를 입고서는 다시는 부흥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7세기 이래 전후 약 1천년을 두고 지속된 석탑의 건립은 오늘 국내에 1천 수백 기의 석탑을 남기고 있으며, 그에 따라 동양에서 '석탑의 나라'로서의 면목을 오늘에 지니게 된 것입니다.

경주 남산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이곳에 가면 요소 요소마다 많은 탑들이 오랜 세월의 풍진 속에서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름 모를 석공들의 땀과 혼과 불심과 원대한 원력으로써만 가능했던 그 수많은 석탑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언젠가는 이 탑들도 먼지가 되어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리겠지만, 그 원력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침묵의 계절인 겨울입니다. 이 침묵 속에서 탑처럼 의연하고, 당당하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처음처럼 아침처럼 시작하고, 늘 깨어있는 수행자가 되시길 두 손 모아 부처님 전에 기원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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