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선정법(단경스님)

운문사 | 2005.12.26 13:07 | 조회 4146

불교는 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치셨는가.

그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명확한 수행법입니다. 명확한 수행법으로 부처님께서 친히 제시하신 길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부처님께서 실제로 닦으셨던 선정법인 아나파나사티와 지관(止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팔리어로 아나파나사티는 아나와 파나와 사티의 합성어인데, 아나는 내쉬는 숨, 파나는 들이쉬는 숨, 그리고 사티는 의식의 집중을 의미합니다. 곧 들숨과 날숨이라는 호흡을 통해서, 산란한 마음을 쉬고 집중하는 마음의 힘을 길러 선정을 닦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수식관이 바로 이것입니다.

수식관이라고 하면 다 알고 계시듯이 나고 드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관법입니다. 마음의 산란함을 없애는 올바른 호흡법인 수식관은 수행의 기초이자 근본이 되는 것이죠. 이 호흡법은 부처님께서 직접하시고 또 제자에게 직접 일러주신 수행법입니다.

아함부의 초기경전에서 주의깊은 호흡법에 대해서 설하셨고, 특히 아나파나사티에 관해서는 『대안반수의경(大安般數意經)』에서 자세히 설하고 계시며, 이 경을 강설해 놓은 『석존의 호흡법』이라는 도서가 도서관에도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빌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나파나사티 다음으로 부처님께서 닦으신 선정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관(止觀)수행입니다. 지관법은 불교만의 독특한 수행법이며, 불교 전통의 수행법으로 부처님 선정의 내용이 바로 지과 관입니다. 이처럼 지관이 아닌 것은 불교가 아니라고 할만큼 불교에서 지관법은 아주 중요한 수행법입니다.

지(止)는 사마타(samatha)라고 합니다. 그 낱말에도 알 수 있듯, 정신집중과 평온, 고요함을 뜻하며, 안정성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지를 수행하면, 마음의 산란함이 그치게 되고,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게 되면, 이러한 지의 수행을 토대로 완벽한 평정을 얻게 되었을 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관의 수행을 계발시킬 수 있게 됩니다.

관(觀)은 위빠사나(Vippasana)라고도 하는데, 본질을 꿰뚫어 파악하는 통찰력이며, 어떠한 현상을 아무 왜곡 없이 관할 수 있는 힘입니다. 사물의 존재방식에 대한 확실하고도 정확한 이해는 올바른 지혜에서 비롯됨을 알아야겠습니다. 관은 반드시 지에 의거해야만 가능하며, 지의 상태에서 관에 나아가지 않으면 진정한 선정이 아니고 참된 해탈자가 될 수 없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와 관은 따로 떼어내어서 닦을 수는 없습니다.

지는 관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있는 그대로 관하는 위빠사나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선정에 들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도를 배워 익히는 자들은 먼저 정이 있고서 혜가 발한다거나, 먼저 혜가 있고서 정이 발한다거나 하여 정과 혜가 다르다 말하지 말라'고 혜능스님도 말씀하십니다.

수행의 초기에는 지와 관을 구분하여 수행하고, 완성단계에서는 저절로 쌍수가 되는데,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상호보완적 성질의 것이지, 지와 관을 따로 떼어내서 지는 지대로 닦고 관은 관대로 따로 닦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잡아함경에 '지를 닦아 관을 이루고, 관을 익힌 후에 지를 이루기도 한다' 는 말씀을 보면 쌍수(雙修)라는 말을 동시에 닦는다는 의미보다는 상호보완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수식관이나 지관수행법(사마타행과 위빠사나 수행법)은 우리가 소승이라고 괄시하는 원시경전에만 설해진 것이 아닙니다. 사교 때 보는 대승경전 능엄경에도 보면 '이 종종지는 모두 사마타 중에서 여래의 위빠사나로써 청정하게 수증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기신론, 원각경에도 지관을 설해 놓았으며, 사집 때 배운 선요, 서장이나 조사어록에도 지관이라는 개념용어를 쓰지 않았을 뿐 결국 지관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화두로써 삼매에 들 때 반드시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한다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죠.

지금까지 한국 불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선수행인 간화선에도 지관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그것은 올바른 수행이 될 수 없다는 말이죠. 뿐만 아니라, 원효대사의 유가사지론과 유식사상의 원류인 해심밀경에서도 지심과 관찰을 상세히 설명하였으며, 유식의 실천가인 유가행파는 무엇보다 이 지관의 실수행을 중요시하는 학파입니다.

이렇듯 초기경전 뿐 아니라 불교 전반에 걸쳐 사마타와 위빠사나(止觀)가 설해진 것을 보면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명확한 수행법'인 지관을 모르고는 불교를 안다고 할 수 없으며, 지관을 닦지 않고는 올바르게 수행한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나파나사티와 지관의 구체적 수행방법에 대한 것은 생략하고, 실수행에 있어서 호홉과 지관의 중요성을 대중 스님들께서 한 번 새겨보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미흡하나마 개념용어만이라도 말씀드렸습니다. 정과 혜, 곧 지관은 배워서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스스로의 경험을 거쳐서, 마음의 자리에서 알아야만 진정 알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수행체계를 상세히 밝혀 놓은 청정도론에 나오는 글로 끝을 맺겠습니다 『내면의 힘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만이, 위파사나에 기반을 둔 지혜를 무기로 해서 갈망의 뿌리를 잘라낼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진실과 도덕, 즉 계의 바닥 위에 서있어야 하며, 집중 즉 사마타의 돌 위에서 도움을 받는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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