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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관세음보살 이근원통수행 - 사교과 지우

가람지기 | 2017.12.16 18:48 | 조회 3572

대중스님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관세음보살님의 이근원통수행에 대해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교반 지우입니다.

 

철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관세음보살보문품 기도를 합니다.

세간의 음성을 관한다는 뜻의 관세음보살님은 대자대비의 보살님으로 우리나라에서 관음신앙은 절대적입니다. 중생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서른 두 가지로 몸을 나투어 중생들을 교화하고, 모든 괴로움과 번뇌에서 벗어나며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공경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통해서 본 관세음보살님은 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이러한 능력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없으신지요? 관세음보살님은 어떻게 수행을 하셨길래 저런 신통력을 지니고 계신 것일까요?

능엄경에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있었습니다.

 

능엄경 6권에는 관세음보살님의 이근원통수행에 대해서 나옵니다. 원통이라는 것은 원만하게 통했다’, 마음의 근원이 모나지 않고 원융하고 넓고 큰 것처럼 깨달음 또한 광대하고 원만하게 통했다는 뜻입니다. 이근원통은 안이비설신의, 六根의 감각기관 중 하나인 耳根을 기본으로 하여 두루 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헤아릴 수 없는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겁을 기억해 볼 때에 어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이름이 관세음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처님으로 인하여 보리심을 발하게 되었으며, 그 부처님께서 저에게 문사수로부터 삼마지에 들어가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이전에 관세음이라는 이름의 부처님이 계셨습니다. 이 관세음여래는 관세음보살님의 스승으로 문사수 수행을 통해서 삼매에 들어가라는 가르침을 내려주셨습니다. 들은 것을 회광반조하여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라는 것이지요. 관세음보살님의 문사수 수행은 그냥 단순히 귀로 듣는 소리로써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가 있으나 없으나 들을 줄 아는 성품이 우리에게는 있는데 이 듣는 성품을 반조하라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이런 수행을 통해서 부처님과 같은 경계를 얻었습니다. 위로는 부처님의 마음과 같아져 중생을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어 근기에 응하여 을 주고, 아래로는 중생들에 합하여 그 슬픔과 소망을 알아 고통을 제거해 주는 능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보문품을 통해서 만난 관세음보살님의 32응신과 14무외력, 4부사의덕은 이렇듯 수행을 통해서 얻어진 것입니다.

 

능엄경에는 물을 관찰하여 깨달음을 얻은 월광동자, 들숨날숨을 관찰하여 깨달음을 얻은 주리반특가 등 25인의 수행법이 소개되고 있지만 문수사리보살님은 관세음보살님의 이근원통수행이 가장 수승하다고 하였고 부처님께서도 이를 인정하셨습니다. 이근원통이 가장 수승하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수보살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5인의 수행방편은 본래 그 우열과 전후차별이 없지만 사바세계에서는 음성으로 가르침의 체를 삼아 입으로 말하고 귀를 통하여 듣기 때문에 관세음의 이근원통 수행이 가장 좋겠다."

 

선사들 가운데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돈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百丈禪師 문하에서 어떤 승려가 종소리를 듣고 깨우쳤는데, 백장은 "뛰어나도다. 이것은 관세음보살의 입도하는 방법이다[俊哉, 此乃觀音入道之門也]"라고 말하였습니다. 香嚴은 대나무가 부딪히는 소리에 견성했고, 圓悟는 닭이 날개치는 소리를 듣고 오도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西山대사는 대낮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오도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합니다.

 

듣는 것은 하심 속에서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나라는 상이 없어야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이근에 스치는 것이 아닌 정말 온전하게 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매순간마다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수스님께서 수업시간에 뭐라고 하셨더라?’ ‘도반스님이 아까 뭐라고 했더라?’

능엄경에서 관세음보살님은 개인의 수행에 관한 접근과 그러한 수행을 통한 공덕을 이웃에게 회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도 수행을 통해 관세음보살이 될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신심을 다시 한 번 다져봅니다.

 

그대 보지 못했는가?

저 모든 부처와 조사가 다 옛날에는 우리와 같은 범부였다.

그분들이 장부고 그대도 또한 그렇지 않은가.

단 행하지 않는 것이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상으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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