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무 심 ( 無 心 ) - 사미니과 진유

가람지기 | 2018.09.29 20:35 | 조회 1550

태양의 뜨거운 열기로 연일 살인적인 불볕더위인 폭염에도 불구하고 운문의 도량에서

여기 저기 바쁘게 다니면서 흘러내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속옷이 헝건하게 젖은체 치문의 여름철을 보낸 치문반 진유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어른스님들 그리고 상반스님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가운데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시고 계십니까

 만물이 성숙해가는 이 가을에 행복의 지도를 어떻게 설계하셨습니까? 저는 무심이라는 행복의 지도를 우주 삼라만상의 화엄세계에 펼치고 싶습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법문의 포문을 열었지만 사실 저는 처음 입학하자마자 법문을 4번째로 해야 된다고 해서 부담이 상당히 컸습니다. 방학동안 몸이 계속 안 좋아서 교수사 스님께서 내주신 숙제도 못하고 지내면서 가까스로 방학이 끝나기 전에 법문할 내용을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에 법문을 막상 쓸려고 책상에 앉았으나 어떤 주제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 앞 번호부터 법문을 해야 하지?’ 하면서 속으로 짜증도 나고, 또 왜? 굳이 법문을 해야 할까? 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법문할 내용을 써주어도 대중 앞에서 법문을 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것인데 하물며 법문과 법문내용 그 두 가지를 다 해야 하니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먼저 법문을 하신 상반스님들도 저의 생각에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앞에서 주절주절 언급한 내용은 저의 아상으로 인한 편견 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 지금 제가 느낀 감정을 솔직히 여러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참으로 힘든 과정 이었고, 사미니계를 받고 강원을 결정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저는 출가하기 전부터 동학사를 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사스님께서는 제가 운문사로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끝까지 저의 의견을 고집스럽게 관철시켜서 은사스님을 설득하였습니다. 이것은 설득이 되신게 아니라 은사스님께서 양보를 해 주신 것이겠지요?

그리하여 저는 동학사에 원서를 접수하고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니 이게 무슨 일이 랍니까? 저를 포함한 면접생은 3명뿐이었습니다. 전 그때 마음이 다소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은사스님께 얘기를 하니 네가 선택한 길이니 어쩌겠니?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몇날 며칠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대중이 적은 곳에서 내가 무엇을 배우겠노? 싶다가도 대중이 적다고 못 배울게 또 뭐가 있노? 라는 나의 갈등은 계속 되었습니다. 고심 끝에 전 결단을 내려서 은사스님께 조심스럽게 운문사로 가겠다고 얘기를 하니 너무나 좋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전 부푼꿈을 안고 운문사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한 강원과는 너무나 다른 실상 자체 였습니다. 이건 소위 군대보다 힘들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여기서 봄철을 보내면서 저는 끊임없이 경계에 부딪힐 때마다 저의 발등을 찌은 결정을 후회했습니다. 저는 매일 생각했습니다. “동학사로 가자고 그래서 여기서 탈출하자! ”라고 제 머릿속에는 온통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니 목련꽃향기로 가득찬 운문의 도량도 저에게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정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봄철동안 도반스님들과의 정은 날로 두터워져서 그냥 여기서 한번 이겨 내보자 라는 결심도 해 봤지만 며칠만 지나면 또 새로운 난관에 부딪혀서 저는 또 나갈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그래! 남는 방학에 가서 은사스님께 말씀 드려서 동학사로 옮기자! 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치문의 첫 철을 보내며 남는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집에 가니 은사스님께서 출타하고 안계셔서 저는 제 마음속 생각을 전달 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복잡한 가운데 법륜스님의 금강경이야기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발상의 전환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이 구절을 살펴 보겠습니다.

보살은 응무소주 이생기심 하라 곧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거울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탁이 가면 목탁이 비추고 , 죽비가 가면 죽비가 비추인다. 그리고 목탁이 사라지면 거울에도 잔영이 남지 않으며. 죽비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인연이 오면 비추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질 뿐 거기에 어떤 미련도 앙금도 없는 것이 거울이다이 글에서 저는 저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봄철 치문 생활을 하면서 힘들어하고 짜증내면서 더욱더 ʻ남 때문에 못 살겠다라고 하면서 다른 곳을 찾아 헤맨 것을 거울 속에 비쳐서 바라보니 지금 현재 괴롭다고 달아나고 숨어려고한 행동도 마음을 내는 무심의 수련이 부족한 탓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제 마음의 번뇌도 매사에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고 분별하는 습이 강해서 일어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무심을 중국의 고전 채근담에서 비유한 글을 인용해 보고자 합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바람이 그치면 나뭇잎도 멈춘다.이 글에서도 그 어느 쪽에도 상이 없는 것임을 말 해 주고 있습니다.


마음은 삼라만상을 짓기도 하고 허물기도 한다고 합니다. 저는 경계에 울고 웃고 하는 마음으로 인해 힘들었습니다.

마음의 욕심을 버리니 저의 치문반 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내 고집을 버리고 짜증내는 마음을 조금씩 버리게 되니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나를 둘러싼 주변환경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운문사의 도량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소임을 같이 하는 상반스님들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마워보였습니다. 심지어 상반스님들이 훌륭해보였습니다. 저도 부처님 앞에서 당당히 최상승의 마음을 내는 첫 출발을 이 운문사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이 운문사를 지켜주셔서 제가 공부할 수 있게 해주신 어른스님들 그리고 상반스님들께 감사드린다고 지극한 마음으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여기까지 저의 얘기를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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