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몰락 - 대교과 지연

가람지기 | 2017.04.19 12:57 | 조회 1646

안녕하십니까? 따뜻한 온도와 꽃으로 화려해진 봄, 그 봄으로 장엄된 화엄의 시작에서 차례법문을 엽니다. 반갑습니다. 화엄반 지연입니다.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입니다.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 저에게는 그저 완벽한 시어로 들리는 이 표현에서 대중스님들께서는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저는 이 몰락하는 자들이 우리네 수행자를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헛된 욕망을 끊고 스스로 이생에서의 몰락을 선택하여 출가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위해 전부를 버린 선택. 그래서 출가를 위대한 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공만을 찬탄하는 세간의 이해를 받지 못해도, 스스로 선택한 몰락은 패배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누구보다 풍족하고 고귀한 생활을 하셨지만 인생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어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출가는 또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다 버려도 아깝지 않던 처음 마음을 떠올려 보노라면 정말이지 위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출가 그 후, 지금의 모습은 어떠하십니까? 최초의 열정과 한참이나 멀어지지는 않았습니까? 저만 그런가요? ‘위대한 포기를 선언하며 출가를 하였지만 그 이후의 삶에서 저는 몰락하기를 선택하지는 못했습니다. 매순간 라는 것이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버리고 비우며, ‘라고 할 것이 없음을 내증하는 사람이 바로 몰락하는 자인데 말이죠.

저는 출가라는 단어의 원어인 빨리어 Pabbajja(파바쟈)에서도 이 몰락의 의미를 다시 한번 발견하였습니다. ‘파바쟈에는 앞으로 나아가다그리고 증발해 버리다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증발해 버리다이 의미에서 뿜어내는 매력에 저는 또 한번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들리는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지는 아련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할 일을 다 해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는 듯한 당당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자에 아무리 감동을 해봤자! 실상 몸과 마음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사건의 현장 속, 저의 에고는, 맨날 잘났다고 바락바락 대거리를 하다 난데없는 펀치에 휘청, 엎어졌다 뒹굴렀다를 반복합니다. ‘웃기는 짜장 짬뽕들은 마치 인도영화 속 군무 장면처럼 아무 때나, 뜬금없이 그리고 떼지어 나타나 속을 뒤집어 터뜨립니다. 저 인간은 왜 저 모양인지, 나는 또 왜 이 모양인지. 구차스런 자아비판이 1+1으로 따라옵니다. 내가 만든 세상과 나 그리고 짜장 짬뽕에 어쩌면 나는 이렇게 모지라게 잘도 반응하는지, 생각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서글프고 쓸쓸해지기 까지 합니다. 이쯤되면 근원에 대한 그리움과 세상을 염오하는 그런 번쩍이는 지혜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와 출가를 했는지 알 길이 없는 겁니다.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합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를 위주로 하는 삶에서는 늘 배반을 당할 일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를 세우려는 매순간 를 몰락시키고 증발시키는 자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의 삶을 선택한,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은 스스로 버림으로서 얻고, 텅 빈 채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망설임없이 몰락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줍니다.

저는 가끔 우리네 인생이 만화 속이라면, 이미 정해진 대본이 아닌 예상밖의 몰락을 선택하여 만화 속 각각의 컷을 흔들고, 그 작은 사각의 컷 밖으로 탈락되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는 정말 만화같은 재미난 상상을 하고는 합니다.

내가 몰락을 선택하는 그 순간 모든 것은 흔들리고, 개념으로 만들어진 우리들의 의식은 붕괴될 것입니다. 마치 카메라앵글이 흔들리며 연출되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이 아름다운 의식의 붕괴는 라는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정해진 설정값을 벗어나는, 내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을 연출시킬 것입니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사라짐을 알아 연민을 내고, 그리하여 스스로 소멸하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제 리모콘을 들어 스스로 를 꺼버릴 준비가 되셨나요? 아니면 연민의 정으로 어쩐지 짠~한 기분이 드십니까?^^

이 봄, 몰락의 지혜가 새록새록 피어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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