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사집반-자명스님

최고관리자 | 2015.01.19 12:06 | 조회 2905

경허 선사를 찾아서..

자명/사집과

 

 

예전사람 참선할 제 잠간(寸陰)을 아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예전사람 참선할 제 잠오는 것 성화하여 송곳으로 찔렀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예전사람 참선할 제 하루해가 가게 되면 다리 뻗고 울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고

무명업식(無明業識) 독한 술에 혼혼불각(昏昏不覺) 지내다니 오호라 슬프도다

타일러도 아니 듣고 꾸짖어도 조심 않고 심상(尋常)히 지내가니

혼미한 이 마음을 어이하야 인도할꼬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자명입니다.

삭발염의하기 전, 저에게 출가를 권유하시던 스님께서 하루는 저에게 참선곡 한부를 주시면서 읽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읽다가 그만 가슴이 먹먹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유는 모른 체 말입니다. 그 후로 점점 경허선사의 글을 알게 되었고, 그의 일대기를 알면 알수록 선사의 사상이 가슴에 새겨져 수행생활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경허선사의 일대기를 짧게 정리해보면,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나 아홉살에 경기도 과천 청계사로 출가하였고 동학사 강사로 추대되어 10년 동안 강단에 섰습니다. 옛 스승을 찾아가던 중, 돌림병이 유행하는 마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생사에 대한 의혹이 일어나 동학사로 돌아와 강원을 폐쇄했습니다. 석달 동안 용맹정진 하다가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이 한마디를 전해 듣고 바로 깨달았으며, 1880년 연암산 천장암의 작은 방에서 1년 반동안 치열한 참선 끝에 확철 대오하게 되고 "사방을 둘러 보아도 사람이 없구나" 로 시작하는 오도송을 지었습니다. 6년 동안의 보임(保任)을 마치고 옷과 탈바가지, 주장자 등을 모두 불태운 경허선사는 무애행(無碍行)에 나섰습니다. 박난주(朴蘭州)라고 개명한 후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함경도 갑산(甲山)에서 19124월 새벽에 임종게를 남긴 뒤 입적하였습니다.

 

 

경허선사의 수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선사는 천장암에서 1년동안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도 않아 땀에 찌들은 누더기에서 싸락눈이 내린 것처럼 이가 들끓었습니다. 또한 이들의 놀라운 번식력으로 짓무른 경허선사의 온몸은 색채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선사는 한 번도 손을 대어 긁는 일이 없었고, 보임을 마친 경허선사는 옷을 갈아입을 때 헌옷에 있던 이들을 새 옷으로 옮겨 살게 하면서 결코 생명을 죽이는 일이 없었습니다. 자신과 무서운 싸움을 시작한 선사에게는 가렵다는 생각조차 일지 않았고 감각은 이미 초탈의 경지였습니다. 밤낮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어도, 살이 짓무르고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도 경허선사는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 경허선사에게는 이미 냄새도 수마도 가려움도, 그 어떤 느낌도 없었습니다.

 

 

 

싸리를 엮어 조그마한 암자를 만들고 구년 동안 누더기 한 벌로만 지낸 고봉 원묘(高峰圓妙)스님, 밤에 좌선하다가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공부한 자명초원(慈明楚圓)스님, 신라 때 의 혜통(慧通)스님은 선무외(善無畏) 화상의 제자가 되기 위해 쇠화로에 숯불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법을 청하였듯이 경허선사께서도 법을 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현재 우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따뜻한 방에, 풍부한 먹거리들,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따뜻한 물에,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쉬는데 잠깐의 망설임도 없는 우리들....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너그럽지 못하고... 고인들처럼 법을 위해 몸을 버리지는 못할지언정, 생사를 걸고 수행하지는 못할지언정, 조금 더 참고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아끼고 노력해야합니다.

 

인생난득(人生難得) 불법난봉(不法難逢)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 몸을 받기도 힘들고 불법 만나기는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선인들께서 법을 위해 몸을 잊고 살아온 까닭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불법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인들의 치열한 수행정신을 늘 마음 깊이 새기고 귀감으로 삼아 닮아가기를 애써야 할 것입니다. 바른 법을 만나려고 이렇게 우리가 늘 발원하고 정진하는 것입니다.

 

삭발염의한기 전, 한 스님께서 공부하라며 주신 글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마음 움직이지 않기를 산과같이 해야 하고,

마음 넓게 쓰기를 허공과 같이 해야 하며

지혜로 불법을 생각하기를 해와 달 같이 해야 할지니

남이 나를 옳다고 하든지 그르다고 하든지 곧은 마음을 끊지 마라

 

다른 사람이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내 마음으로 분별해서 참견하지 말고

좋은 일을 겪든지 좋지 않은 일을 당하든지 항상 마음을 편안히 하고 마음을 무심히 가져라

 

또한 쑥맥같이 지내며 병신같이 지내고

벙어리같이 소경같이 귀먹은 사람같이 어린아이같이 지내면

마음에서 저절로 망상이 없어지리라.

 

지금은 부족한 것이 더 많고 노력하는 만큼 잘 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경허선사의 말씀처럼 되는 날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선사를 만난 이후로 저 자신을 돌이켜보며 아주 작은 일부터 조금은 벅찬 일까지 어떤 일이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어느 책에서 숭산 스님은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이 육신은 자동차와 같다고 했습니다. 대형차도 있고 소형차도 있고 좋은 차도 있고 나쁜 차도 있고.. 그러니 육신에 집착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이 못난 육신, 이 껍데기에 메이지 말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진정한 자유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경허 선사와 같이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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