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대교반-유정스님 차례법문

최고관리자 | 2014.10.20 13:35 | 조회 3257

보살행

 

안녕하십니까?

크고 방정하고 광대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보살행의 꽃으로 장엄한 경인 대방광불화엄경을 보고 있는 화엄반 유정입니다.

80권이나 되는 광대한 분량의 화엄경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일까요?

바로 보살행입니다.

사실 이 보살행은 화엄경을 보는 지난 1년 동안의 제 화두였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이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사람인데
, 사실 저는 발심하여 출가할 때도,
출가한지 몇 년이 흐른
뒤에도
깨달음에만 관심이 있었지

중생구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운문사에 들어와서도 한참동안 이어졌는데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강원에 들어왔던 저는 공부에 방해가 되는 요인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량하고
,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치문시절, 입선 시간에 걱정자리가 길어지면, 그렇지 않아도 짧은 입선시간을 더 짧게 만드는 도반스님과 상반스님을 원망하기도 했고, 공양물 때문에
쩔쩔매고 있는 부반장 스님을 보고도
누군가 도와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못 본척하며 경상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
그리고 아픈 도반스님의
대타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반장스님의 눈길을 저도 애써 피하며 힘들다는 구차한 핑계로 저의 행동을 합리화하기도 했습니다
.

그러나 시간이 흘러 화엄반이 되었고, 저에게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걱정자리 후, 짧아진 제 공부 시간에 대한 아쉬움보다 울고 있는 도반
스님에게 힘내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 느껴졌고
,
경상에 앉아 독송하는 것보다 부반장 스님을 도와 공양물을 나누는 것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그리고 아픈 도반스님을
위하여 말없이 그 스님의 대타를 서는 것이 조금 더 건강한 저에게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
그때는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편해서 했던 행동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개인적이며 때론 지극히 이기적이었던 제 마음 속에서 피어난 조그마한
보살심
, 보살행의 발로였습니다.

 

보살에게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은 두가지 목표가 아니라 서로 뗄 수 없는 한가지 목표입니다. ‘화엄경에서도 보살이 처음부터 목표로 삼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초발심공덕품에서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은 시방의 일체세계 중생을 위해 보리심을 내었으며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일체 세계를 분별해 알기 위해 보리심을 낸 것이라고 말한 것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보살심과 보살행이야말로 깨달음의 출발이자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 무엇보다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 자체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치열히
구도하셨던 것도 중생에 대한 연민과 애정 때문이었으며 깨달은 후
궁극적으로 돌아간 것도 중생 구제의 길이었습니다
.

그러나 화엄경에서 그리고 있는 보살의 길은 우리가 전혀 다가갈 수 없는
것처럼 너무나 멀고
,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의 길을 쉽게 포기해
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 하지만 처음 발심한 보살이 곧 부처이다라는 구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닦아야할 보살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여정일 수도 있으나
,
내가 지금 이 순간 보살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 행한다면 이 순간의 나는 진정한 보살이며, 부처가 되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부처님처럼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어 대자유인이 되겠다던 저는 여전히
에 집착하고 내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한 낱 범부에 불과할 뿐입니다
.
그러나 운문사를 다니는 4년 동안 제가 얻은 가장 값진 보물은

중요하지만
, 함께하는 사람의 행복도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날마다
만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서 저는 여전히 나의 편안함과 나의
이익에 대해 생각하지만
, 결국 가장 행복한 선택은 타인과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선 내가 먼저 깨닫고 난 뒤에 회향을 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
내가 아는 만큼 실천하고 회향하는
삶이 반쪽자리 깨달음이 아닌 진정한 깨달음을 향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졸업을 몇 달 앞둔 지금, 길 없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끝없는 여정에서 무엇을 가슴에 품고 걸어가야 할지를 알게 해준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

 

대중스님 여러분,

날마다 조우하는 도반스님들 나아가 일체 유정들과 무정들에게 항상 도움이 되고, 이익되는 수행자 되시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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