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사교반-종윤스님

최고관리자 | 2015.01.19 12:42 | 조회 2772

새로운 회향을 꿈꾸다

 

종윤/ 사교반

신심으로 욕락을 버리고 일찍 발심한 젊은 출가자들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똑똑히 분간하면서, 걸어가야 할 길만을 고고하게 찾아서 가라.”

어른스님과 대중스님들,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종윤입니다.

방금 전한 글귀는 우바리 존자의 말씀입니다.

신심으로 발심한, 그러기에 걸어가야 할 길만을 고고하게 찾아서 가리라, 굳게 믿었던 출가자가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에 흔들려 멈춰 섰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길 위에 선 자,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걷다보면, 결국 길을 찾게 되겠지요. 오늘 저는 새로운 회향을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차례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부반장 스님!!” 오늘도 저를 부르는 도반스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반 물품 쓸 때나, 공양물이 왔을 때, 울력 있을 때, 밥참이나 간식을 챙길 때 그리고 지대방과 관련된 정리정돈이나 전달사항이 있을 때 부반장인 저의 활동이 시작됩니다. 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종횡무진(?) 도량을 누비고 다니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그 덕에 하루하루 시간은 잘도 가는데, 다만, 사시 이후 12시만 지나면,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저하가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기진맥진한 제 모습을 본 도반스님들은 결국 말합니다. “종윤, 얼른 들어가서 쉬어~”. ~그러나 누워있다가도 뭔가 할 일이 남아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그 예감은 적중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힘들면 재충전을 위해, 기회가 되는 데로 쉬어주려고 하지만, 부반장 소임 처음 시작할 땐, 쉬려고 하다가도 도반스님들이 무언가 필요한 것 같고, 찾는 것 같으면 촉각을 세우고 있다가 일어나기를 몇 차례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를 지켜본 도반스님은 말합니다.

그냥 둬. 우리가 알아서 찾을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스님은 몸 관리 잘해서 이번 철 소임 잘 마칠 생각만 해. 이렇게 일일이 신경 쓰면 며칠 못가서 쓰러진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치문 여름 철, 바깥종두 소임을 살다가 몸 상태가 악화되어, 소임 끝나기 전 20여일을 앞두고 장기출타를 갔던 기억. 그 땐 여름불교학교 준비 기간이라 인원이 더 없을 때였기에, 출타를 가는 것이 참 미안했습니다. 다녀오라고 동의해 준 반 스님들이 고마웠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 대타를 살아야 된다는 것이 못내 마음 걸렸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입니다. 출타의 공백에 대한 미안함. 돌아와서도 그 마음이 부담으로 남아 스스로를 짓누르다, 결국 몸도 마음도 더욱 힘들어져 병고자로 보낸 시간들. 주어진 무언가를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 낸 악순환의 고리들. 뒤돌아보면 그건 다른 누군가로 인한 것이 아닌 자승자박으로 낳은 결과였습니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하지만, 그 때의 저에게 시간은 그 무엇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막막함 자체였습니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무너지고, 놓친 것들에 아파하다, 한없이 약해져간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 속에서 심신의 한계를 느낀 어느 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저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끝을 앞두고 있는 사람처럼, 절망 속에 한 철을 마쳤습니다.

휴식의 시간. 출가 전 기도처를 다시 찾았습니다. 저를 발심하게 해 준, 그 곳 주지스님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길지 않은 차담 속에서도 제 심중을 꿰뚫어 보시곤, “종윤스님, 마음의 틀을 만들지 마세요. 강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마음의 틀을 만들지 마세요. 한번 틀을 만들기 시작하면, 그 틀에 갇혀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요.”

틀을 만들어 무언가를 본다는 것. 제 자신이든 도반에 대한 것이든 혹은 일에 관한 것이든, 얼마나 많은 틀로 잣대를 만들어 왔는지, 그 곳 주지스님의 말씀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돌아오는 차안,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고. 그리고 그 동안 저를 가두고 있던 마음의 틀을 깨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치문 이후 멈춰버린 제 안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만들어낸 마음의 기억들. 얼마나 켜켜이 쌓아두고 있었는지, 거둬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간은 흐르고, 겨울이 왔습니다. 부반장 소임을 살고 있는 지금,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제 소중함의 비결은 스스로를 그대로 보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자신을 직면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합니다. 소심한 면이 많은 저로선 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스스로에겐 관대함을 타인에겐 자비로운 시선을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새벽에 눈을 떠 하루를 마감하는 순간까지, 부반장 일과를 순순히 마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는 고마운 도반스님들. 소임 살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든든함과 따듯한 배려로 함께하는 반장스님, 힘들고 아픈 순간, 흔들리는 눈빛하나에도 다정한 격려로 힘이 되어주는 스님들, 그리고 중심을 잃지 않도록 수많은 조언으로 이끌어준 도반스님, 그대들이 아니라면 지금 제가 어떻게 이렇게 씩씩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날씨가 춥다고 해도, 오후의 햇살은 금당을 따사롭게 비춥니다. 공부를 하고 경을 읽고, 휴식을 취하는 도반스님들의 모습에서 평화로움을 느낍니다.

3년의 시간이 지나고 새해를 맞았습니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제 곧 금당을 떠나야 한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자리가 계속될 것 같은 이 느낌, 막연함 보단 그동안 운문사 학인으로 익숙해진 저에게 주는 선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살아온 날들, 뒤돌아보기 보단, 살아갈 날들, 긍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저로 거듭나기를. 이곳에서의 시간은 제게 주어진 기회라고 믿으며, 새로운 회향을 꿈꿉니다. 그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저의 공덕회향문을 올리며 차례법문 마치겠습니다.

발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출가자의 길,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까지 부처님 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이 공 덕, 평생 지킬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내가 지은 모든 인연, 아픔 없이 회향할 수 있기를,

그 인연의 회향공덕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우리는 수행자,

생사해탈의 경계가 멀고, 힘들어도,

멈춤 없이 나아가 성불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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