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의 자리_현견스님

최고관리자 | 2012.11.21 14:59 | 조회 3778


나의 자리

현견/사교반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현견입니다. 오늘 "나의 자리"라는 제목으로 제 얘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출가하기 오래 전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피가 목까지 차오르는 걸 느낍니다. 숨이 막혀 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숨이 멎습니다. 그때 튀어 나온 말은 "살려주세요" 가 아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숨이 멎었다고 느꼈을 때 나온 말은, 살려달라는 게 아니고 차라리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그렇게 삶의 허망함 속에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항상 묻습니다. "난 지금 어디 있는가." 강원 4년을 마칠 정도의 시간이면 그 답변이 더 확실해지겠지요.

운문사 강원을 오기 전에 남겼던 글입니다. 자문해 봅니다. 그 후로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설펐던 발우 공양. 지금은 가벼운 손놀림만으로도 힘들이지 않고 발우는 어느새 단단히 메어져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법당에서의 예불 자리도 어느새 치문, 사집반 스님들의 뒷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물러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 자리는 어디에 가 있는 걸까요?

남들보다 늦은 수계를 받고 보름을 늦게 들어온 치문 첫 철, 습의를 따라 잡기 바뻤던 첫 철, 그리고 종두 소임을 살았던 치문 여름. 남들보다 일찍 씻고 저녁 공양을 나르고 나면, 저녁 이부자리에 들 때까지도 속옷까지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방학하는 날 까지도, 새벽부터 내리는 비에 무거운 비옷을 입고 공양을 나르던 날. 제게 남은 것이라고는, 입고 갈 옷과, 바랑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발우까지 짐을 싸서 보낸 뒤였으니까요.

방학 동안 어떤 결정을 할지 확실치 않은 상태로 기차에 오릅니다. 아마도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운문사를 떠난 첫날 밤. 그 밤을 자고, 저의 남은 3년 반,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한 결정은 너무도 확연하게 내려져 있었습니다. 운문사를 떠난 그 하루만으로도. 이곳이 얼마나 제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한 확신으로 여름 방학 내내 한 점의 마음의 갈등 없이 다시 이 자리에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문사에서 2년여의 시간이 흘러 벌써 사교 가을입니다. 저는 지금 어느 자리에 와 있는 걸까요?

자자시간에 어른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행 중에는 참선, 염불, 간경, 기도 등이 있지만, 운문사에서는 소임살이도 또한 수행이라고. 한여름과 한겨울 두 차례의 종두소임.

새벽 108배마다 열 네 분의 부처님 명호 대신 열 네 명의 우리 종두 스님들의 법명 앞에 절을 올립니다. 종두대장스님부터, 종두막내스님까지. 한 철 동안 건강하게 아프지 말라고. 그렇게 108배를 올리며 하루를 시작해야만 안심이 되었나 봅니다. 치문이면 누구나 사는 종두소임이지만, 줄기차게 내리던 한여름의 비와 땀. 한겨울의 칼바람과 함께 어찌 다 지나갔나 싶습니다. 옆자리를 지켜주었던 도반스님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집 봄, 종무소 시자소임. 소임을 마치고 나니, 첫 철 습의로만 배웠던 "잘못 살았습니다"가 절로 나옵니다. "즉사이진(卽事而眞)". -매사에 진실하라- 는 금언에 비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한 철 소임을 잘 산 것 같지 않습니다. 힘든 소임을 살면서도, 혹은 일을 맡아 하면서도 참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부당하다고 느끼기 보다는 "매사에 진실했는가"를 자문하면서 흐트러진 마음자리를 살피지 못함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따름이고, 도반스님들 앞에서의 스스로의 발로참회는 머터로운 언행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해줌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커져 갑니다.

"일생동안 자기의 고집을 버리지 못하면, 대중과 함께 하여도 이익이 없다"하였습니다. 운문사 안과 그리고 밖에서 앞으로 살아야 할 소임들… 어떤 자리에 있던 대중을 휘두르는 소임이 아니라. 대중에게 봉사하는 소임으로서 낮추고 낮추는 소임살이가 또 하나의 수행이 되겠지요. 이제 운문사에서 남은 시간은 다섯 철 정도입니다.

사교가 된 어느 날, 이제 이 청풍료에서 다시는 입선 들일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아직 떠나지도 않은 곳에 대한 그리움이 벌써 쌓이기 시작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암흑의 시기가, 누군가에게는 일생의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묘사될 만큼 운문사의 생활은 개인마다 다른 기억의 발자국을 남깁니다. 첫 철 수업시간에 받은 자유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내가 있기로 선택한 것이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유롭다." 라는 대답은 만용일 뿐이지 마음자리는 그렇지 못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 수업시간에 질문한 "자유"에 대해 숭산스님이 하셨던 말씀을 떠올립니다

자유란 막힘이 없음을 뜻한다. 만일 부모님께서 심부름을 시키는데 난 자유를 원한다고 부모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란 생각으로부터의 자유, 모든 집착으로부터의 자유, 생과 사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부모님이 "옷이 더럽구나. 바꿔 입어야겠다"라고 한 말에 " 싫어요. 바꿔 입지 않겠어요. 난 자유로우니까"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더러운 옷과 자유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만일 진정 자유로우면, 그때는 더러운 것도 좋고, 깨끗한 것도 좋다. 그게 문제가 되지 않으며, 셔츠를 갈아입어도 좋고, 갈아입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이것이 마음이 갖고 있는 욕망과 집착으로부터의 진정한 (진정한) 자유일 것이다.

지금 있는 이 곳, 운문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고르지 않고 피하지 않으며, 내가 함께 할 사람, 그리고 있어야 할 자리를 고르지 않고 피하지 않는 것이 제가 수행해야 할 몫 중의 일부입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3년 전 선택한 자리에 머물렀고, 선택한 시간만큼 머물렀다 갈 것이다. 내가 가진 자유는 얼마 만큼이며, 내가 누리고 있는 마음의 자유는 어디만큼 와 있는가." 졸업이 성큼 다가올 내년이면 아마도 제 자신에게 다시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그 때는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요.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여일 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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