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하고 싶은 일_혜덕스님

최고관리자 | 2013.08.07 15:09 | 조회 4119



하고 싶은 일

혜 덕 / 화엄반  

무덥고 습한 계절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는 운문사의 여름에 온몸 불살라 정진에 여념 없으신
대중스님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 하고 싶은 일 "이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대교반 혜덕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십니까?

출가하기 전 은사스님께서 저에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던 적이 있습니다.
일단 아르바이트 하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 하는 것이 꿈이라는 제 대답에

"공무원 시험에는 왜 합격해야 하는데요?" 하시길래

"제 친구가 프리랜서라 돈이 들쭉날쭉하거든요, 저라도 안정적인 월급 받아야 앞으로 생활이 될 것 같아요."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말에 빙긋 웃으시면서 "그게 정말 보살님이 하고 싶은 일이에요?"라고 다시 물으시는데,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이렇다 할 꿈이 없이 어찌어찌 대학까지 졸업했고, 마땅히 좋아하는 일도 없어서 적당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던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내가 진짜로 하고싶은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오랜 생각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 걸림 없이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 였는데요.

공무원 시험 합격도, 안정적인 월급도, 프리랜서인 남자친구도 저를 행복하게 해 줄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우연인지 필연인지 천천히 직장도 남자친구도 돈도 없어진 저는 지금의 은사스님 밑에서 삭발염의하고 출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묻습니다.

"혜덕아, 하고 싶은 일은 찾았니?" 그러면 저는 잠시 생각합니다. '내가 하고싶은 일이 도대체 뭘까?'

머릿속에는 수 만 가지의 하고 싶은 일로 가득한데도 정작 꺼내서 말씀드릴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중에 그나마 가장 무난한 하고 싶은 일로 말씀을 드려봅니다.

"여행이 하고 싶어요. 일본도 가고 싶고, 국내도 여기 저기 가보고 싶은 데가 많구요."

"탱화도 배우고 싶고, 전문작법도 해보고 싶고, 유학도 가보고 싶고,, 또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해보고 싶고..."

그러면 은사스님께서는 또 빙긋 웃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아니 혜덕아, 감각적인 행복은 결국 고통을 유발한단다. 그런거 말고 니가 꼭 해야 하고 니가 진짜로 하고싶은거... 그게 뭘까~?"

그제서야 저는 은사스님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립니다. 너 뭐해보고싶냐를 물으신게 아니셨던거죠.

부처님께서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며,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 열반에 도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해야만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고, 해야만 하는 일이 하고 싶어서 지금 하고 있는데도 고통스러운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서 강사스님께서 내주신 숙제를 해야만 하는데 하고 싶지 않아서 고통스럽다거나, 꼭 살고 싶었던 소임을 가위바위보까지 해서 살게 되었는데도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진다든지 말입니다.

이런 생활의 소소한 일 말고도 정말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일, 바로 '열반을 성취하는 일'을 할 때에도 우리는 하고 싶지 않아서 미루고, 하고 있으면서도 고통스러워하는데요. 제가 머물고 있었던 한 수행센터에 찾아오신 어떤 스님은 몇 년씩 소임을 살다가 겨우 시간이 생겨서 수행을 하러왔지만 정작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앉지 못하고 종무소에서 식당으로, 지대방에서 법당으로 도량 곳곳을 배회하기도 하고, 또 어떤 스님은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앉아수행하면서도 어제보다 오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합니다. 괜히 예민해져서 이것저것 트집을 잡는 사람도 많습니다. 결국 해도고통, 안 해도 고통이라는 거죠.

유명한 태국의 수행자 아잔차 스님께서는 마음은 저항에 부닥칠 때 화를 내고 괴로워하며 의심하기 시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번뇌와 욕망이 방해를 받기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되며 심지어는 수행을 그만두고 싶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른 수행이며,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통은 수행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번뇌가 불타고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고통스러우니까 그만 할래 가아니라, 지금 이 고통은 내 번뇌의 마지막 몸부림 이니까 조금 더 해야겠다 해야 결국에 행복하고 궁극적으로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아잔차 스님은 삶이 곧 수행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생활 속에서 해야 하는 일은 비록 사소한 작은 일일지라도 정성을 다하며, 순간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을 알아차림 한다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수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저희 은사스님께서는 항상 제게 묻습니다. "혜덕이는 해야만 하는 일이 하고 싶고, 지금 하고 있니?"라고 말입니다.

해야만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 이 세 가지는 어쩌면 수행자라면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보고 체크해 나가야 하는 마음속의 조행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해야만 하는 일이 그다지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낸 것도 아닙니다.

다만 출가해서 강원에 들어와서 많은 어른스님과 대중스님 속에서 화합하며 살아온 이 4년 동안 제 가슴속에 남아있는 한 가지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지금 이 순간 여기서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고, 이것을 알아차렸을 때에 순간순간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중스님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하고들 계시는 그 일들이 무엇이든지간에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에 온전히 깨어있어 열반을 성취할 수 있기를 마음속 깊이 기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차례법문 한 이 모든 공덕을 대중스님들과, 어른스님, 도움을 주신 천신들 그리고 성인들 친한 이든 원수이든 이 세상 모든 존재들에게 공평하게 회향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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