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참된 친절 - 사집과 도현上

가람지기 | 2017.12.02 09:51 | 조회 1553

반갑습니다.

청아한 파아란 하늘과 흰 구름, 맑은 바람이 매력적인 가을에 참된 친절이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집반 도현입니다.

 

친절에도 거짓이 있고 참이 있는가?’ 잠깐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난 여름방학 때 은사스님과 사숙님과 함께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같이 치료를 받게 된 사숙님은 20~30년 동안 피부트러블로 심신이 많이 지쳤던 상태였는데, 마침 용한 한의원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입니다. 3대째 이어 내려오는 이 한의원은 주로 2대의 80세가 넘으신 노한의사 선생님이 금침을 이용해서 혈 자리에 자극을 주어 치료를 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불치병이라 생각했던 사숙님에게 노한의사 선생님은 낫게 해주겠다. 6개월만 꾸준히 침 치료를 받으러 오라하시며 풍욕을 함께 추천하셨습니다. 오랜 세월 치료를 하며 생긴 노하우와 자신감,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느긋함이 치료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걱정을 내려놓고 완치를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치료를 3일 받고 4일째가 되던 날 사숙님께서는 퇴굴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약도 안 지어주고 침 치료만 해서 낫겠어요? 매일 다니는 것도 일이고...”. 저와 은사스님은 “20~30년을 힘들었는데 약으로 몸에 부담도 안주고, 자신 있게 낫게 해주겠다고 하시는데 믿고 6개월만 다녀 보세요.”, “위약도 진짜라고 믿고 먹으면 병이 낫기도 해요라며 낫기를 바라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으로 계속 치료를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사숙님은 이미 포기의 마음이 커진 상태로 부정의 대답과 귀찮아하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과 말들을 들으며 어느 샌가 저도 모르게 제 마음속에서 아휴~ 왜 저러시나! 그냥 딱 믿고 치료해 보시지. 밑져야 본전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아휴~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말을 모른 결에 내뱉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그저 안쓰럽고 치료가 잘 되어 낫기를 바라는 마음 50%에다 은근히 밀려오는 답답함과 나 몰라라 하는 심정 50%가 섞이면서, 그냥 더 이상 말하는 것도 지치고 은사스님과 주고받는 말을 듣는 것마저 은근히 짜증스러워졌습니다.

얼마 후 여일하지 못한 저의 마음 상태를 자각하고 반성하며 생각을 하지 말자’, ‘한결같지 못한 나의 마음이 문제지’, ‘다 인연 따라 사는 거지라며 부정적인 제 마음을 긍정적으로 돌리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아무것도 일어난 일이 없었다는 듯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의 찜찜함은 끝내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 마음은 뭐지?’라며 뭔가 순수하지 못한 제 감정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뭔가 모르게 착잡한 마음을 가지고 우연히 길을 걸어 서점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곳에서 생각지 못하게 손에 잡힌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기억이 안나고 어느 일본스님께서 쓰신 책이었는데, 짤막짤막한 글들로 엮여진 것이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던 중 거짓 친절이란 소제목에 눈이 갔습니다.

내용인 즉, “상대가 자신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나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친구의 말을 들어줘야지라며 일종의 흥분상태에 빠진다. 만약 상대가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이 하는 말을 듣지 않거나, 계속 완강하게 거부해서 결국, ‘네 마음대로 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 되면 결코 친절하게 대할 수 없게 된다. 이런 행동은 친절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지배욕이거나 상대를 마음대로 조정함으로써 자신의 자존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것에 가깝다. 즉 우리가 베푸는 친절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전부 가짜이며 거짓이 섞여있는 친절이다. 상대의 특수한 상황을 인식했기 때문에 생긴 친절은 상대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등의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금새 사라진다.”

이 글을 보는 순간 ~ 이거였구나!’라며 조금 전의 제 마음 상태가 이해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 밑바닥에 내재되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저의 솔직한 감정이었던 것입니다. 이 생 이전부터 나의 업식(業識)에 수없이 쌓여온 나의 아상(我相), 아만(我慢)이었던 것입니다.

 

대중스님들께선 이런 경험 없으셨습니까?

 

이 시대에 존자님이라고까지 칭송 받는 달라이 라마 스님은 불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친절한 마음이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친절과 따뜻한 몇 마디 말이 지구를 행복하게 합니다. 지구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지구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행복감을 누리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무소유의 정신으로 유명한 법정스님의 법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무엇인가? 불교도 기독교도, 혹은 유대교도 회교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바로 친절입니다. 친절은 자비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인간계에 사는 이상, () () ()로 삼업(三業)을 지으며 살아갑니다. 내가 자각하지 못한 채 행해지고 있는 생활 속에서의 친절 가운데에도, 조금의 거짓이나 불순함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철저히 깨달아 그 밑바닥을 바로 보고 행하면 어떨까요?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거짓됨 없는 참된 친절을 실천하고 산다면 우리의 삼업(三業)은 훨씬 맑아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의 이 참된 마음 씀씀이가 결국에는 대자대비한 부처님마음으로 귀결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소소하다면 소소한 이 참된 친절을 행함으로써, 우리 모두 자타(自他)를 진정으로 이롭게 하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실천하는 수행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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