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恭敬一切衆生이 卽降伏其心-사교반 현밀

가람지기 | 2021.07.18 06:49 | 조회 583

恭敬一切衆生卽降伏其心

현밀/사교과

 

불도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것이며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며, 자기를 잊는다는 것은 만법을 증득하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현밀입니다. 이 앞의 글은 도겐선사의 정법안장에서 불도佛道를 따름에 대한 글입니다. 불도를 배운다는 것, 자기를 배운다는 것, 자기를 잊는다는 것으로 불교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생각합니다.

 

또 이 글은 출가 전 성철 큰스님의 책 영원한 자유를 읽고 발심을 했던 저를 떠올리게 합니다. 책의 내용 가운데 몇 가지 기억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욕망에 휘말리어 자기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큰 바다와 같고 욕망은 거품과 같습니다. 바다를 봐야지 거품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세상 모든 중생들이 다 부처임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 글을 읽고 살면서 행복해도 행복하지 않는 이유는 인생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자기를 바로 보면 자기 안에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이 깊은 가르침을 듣고 삶을 살아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자유를 얻기 위해 출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길임을 여실하게 알았습니다.

 

출가만 하면 무엇인가 다 이루어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불도를 이루는 길 그 여정은 인욕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좋음과 싫음, 옳고 그름, 성냄 등 번뇌들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수행은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고 늘 어긋나는 것 같았습니다.

 

수행하는데 왜 나는 괴로울까? 이 괴로움을 어떻게 해야할까?

풀리지 않는 실마리처럼 마음속에 물음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괴로움이 커질수록 이 괴로움을 여의고자 하는 마음도 또한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금강경을 공부하던 중 선현기청분에서 수리보가 세존께 묻습니다.

世尊 善男子 善女人 發阿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세존이시여, 보리심을 발한 보살은 어떻게 마음을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습니까?” 이런 수보리의 질문으로 문득 나는 어떤 마음으로 수행을 했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질문) 대중스님들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수행하고 계십니까?”

저는 행복해야 한다는 마음, 이전보다 나아져야 하는 마음, 얻으려는 마음으로 수행을 했었습니다.

 

앞에서 자기를 바로 봅시다. 욕망에 휘말리어 자기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라는 성철큰스님의 글을 보고 허망한 것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출가 했는데 모양만 바뀌었을 뿐, 이전의 자신처럼 똑같은 마음으로 수행에 욕심을 내었던 제 자신을 보며 부끄러웠습니다.

 

또 수보리의 질문에 대해 금강경 오가해에서 육조혜능스님께서는

念念淸淨名爲菩薩이요. 心無取着名摩訶薩이니 恭敬一切衆生卽降伏其心이니라.”

생각 생각이 청정함이 보살이요. 집착이 없는 마음이 마하살이니, 일체 중생을 공경하는 것으로 곧 그 마음을 항복받는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일체 중생을 공경하는 마음으로써 항복 받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수행을 삼는다는 육조혜능스님의 말씀을 통해 겸손하지 않았던 제 자신, 아만심으로 남을 힘들게 했던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보며 반성하고 공심空心으로 수행하며 살아야겠다는 발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알기 전까지 고민하고 힘들었던 이전의 수행은 헛된 것이 아니였습니다. 점점 더 커져가는 번뇌는 사실 자신을 선명하게 알아가는 과정이 였습니다. 번뇌를 통해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장애를 알아서, 자신을 드러내고 이런 자신을 비추어 보는 지혜가 나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장애는 수행을 도와주는 벗이고 그 속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內勤剋念之功하고 外弘不爭之德하라

안으로는 망념을 극복하는 수행을 부지런히 하고 밖으로는 다투지 않는 덕을 넓혀라이 글은 위산대원선사경책에서 나옵니다. 또 제 수행에 있어 가장 큰 힘을 주는 글입니다.

 

나를 세우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안으로 나라고 하는 모든 것들, 시비분별을 내려놓는 것으로 극복하고 밖으로도 나를 세우면 다툼이 생깁니다. 안팎으로 다투지 않는 것이 수행의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며 알아가고, 자신을 내려놓아 다투지 않고, 모든 인연을 공경하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잊어가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자기를 배우는 것이고 불도를 이루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운문사의 생활은 언제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무상함을 보여주며 저를 잊게 만듭니다.

호거산의 자연 변화무쌍한 모습은 늘 저를 무르익게 만들고

어른스님들의 그늘아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고

도반들은 늘 곁에서 바른 길로 바른 마음을 볼 수 있는 신중님들이고

 

어디 하나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게 하는 곳이 없는 운문사는 힘들지만 그 속에 행복이 있고 나를 더더욱 수행자로 만들어 줍니다. 이 자리에 있으매 감사하고 앞으로도 출가의 참 뜻을 잊지 않고 자신을 바로 보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제 법문을 들어주신 대중스님들께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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