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초발심 수행-화엄반 총지스님

가람지기 | 2021.10.11 20:15 | 조회 770

초발심 수행

총지/대교과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53분의 선지식을 친견하고 한분 한분께 묻습니다.

보살은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행을 닦으며, 어떻게 보살행을 행합니까?’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한 선재동자는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구도에 대한 열망으로 화두를 이어나갑니다.

여기 모인 대중 스님들은 매일 어떠한 수행을 하시며 어떠한 보살행을 하고 계십니까?

법화경에 따르면 제불세존은 일대사인연을 위해 이 세상에 나오셨다고 합니다. , 범부중생은 이 땅에 온 목적 없이 죽기 두려워 살고 있지만, 부처님께서는 큰일을 위해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져봅니다. 나는 과연 일대사인연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살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요? 막연하게 모든 선업을 쌓고 모든 공덕을 수집하라는 말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직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치문, 사집, 사교, 그리고 화엄의 중반을 지나오며 다양한 조사어록과 경전들을 접했습니다. 이러한 대승경전 등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기초가 탄탄해야 했고, 금구성언을 바른 견해로 섭수하기 위해선 일상생활에서의 저와 경전 속 부처님 말씀 간의 괴리감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시성정각을 보살 만행의 꽃으로 장엄한 경을 독송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너와 나를 가르고 있는 이중마음을 보며 모순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초발심자경문을 다시 꺼냈고, 그 간 운문사 대중 속 저의 모습을 돌아보며 원력이 없이 보낸 나날들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보조국사의 계초심학인문은 특히나 초심자들의 내공을 튼튼하게 해주는 데 아주 명료하고 직선적인 방법을 제시해줍니다. 그 중 몇 구절을 간단히 소개해드립니다.

 

첫째, 나쁜 벗을 멀리하고 착한 벗을 가까이 하여야 한다. 무릇 초심자는 계율을 지키지 않고 욕망을 가까이하는 나쁜 벗을 멀리하고 계행이 청정하고 지혜가 명철한 이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즐겁다면, 그 상대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무엇을 같이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말씀과 행이 아니라면 단호히 무소의 뿔처럼 좋은 벗을 향해 떠나야 합니다.

둘째, 다투는 이가 있으면 양쪽을 화합하게 하여 오직 자비심으로 서로를 대하게 할지언정 나쁜 말로 서로를 상하게 해선 안된다. 만약 도반을 속이거나 업신여겨서 시비를 가린다면 그와 같은 출가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 아무리 성불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출가한 수행자라도 일상생활을 함께하다보면 종종 중생심이 부딪쳐 순간에 윤회의 굴레로 출입하기를 반복합니다. 옆 도반과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하면 정법과는 반대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빨리 알아채야 합니다.

셋째는 구체적으로 생활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지 알려줍니다.

세수할 때 큰 소리로 하지 말며, 말할 때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 안된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산문 밖을 나가선 안되며 ,아픈 이가 있다면 자비심으로 돌보아 주고

넷째, 생활도구를 가려쓰되 검약하며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공양시 맛있고 맛없는 음식을 가려 좋고 싫다는 마음을 내면 안된다. 이 공양이 도업을 이루기 위함임을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와 서양 신식 문물에 길들여진 삶을 살다가 출가한 우리들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연습을 반복해왔습니다. 하지만 출가자의 삶은 좋은 것을 택하는 삶이 아닙니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중도를 연습하는 삶입니다. 오늘도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을 탐낸 제 안의 삼독심을 깊이 참회합니다. 부처님께서 율을 만드실 때는 수범수제隨犯隨制라 하여, 먼저 어떠한 잘못이 발생하면 곧 따라, 그것을 바로잡는 계율을 세우셨는데, 이러한 대목들 역시 예부터 있어 왔던 폐단에 상응하여 만들어진 것이므로 우리들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해 게으르지 않도록 하고 그른 줄 알면 바르게 고치며 참회하여, 힘써 연마하면 수행의 문이 청정해질 것이다. 비록 방금 전까지 탐심으로 무엇을 취했더라도 뉘우치고 다시 그러지 않으면 그것이 한 발 나아가는 바른 수행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정된 나는 있지 않고 늘 새로운 나입니다. 대중생활하는 예절, 공양하는 예절, 예불하는 예절, 공부하는 자세 등 화엄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익혀야 할 기본적인 율의들이 많습니다. 일상생활을 떠나 따로 불법이 있다고 하면 이러한 불법은 정법이 아니요, 생활 속에서 신정행身淨行, 구정행口淨行, 심정행心淨行, 자비행慈悲行을 실천한다면 그 자체가 수행이요, 기도입니다.

시간 시간이 흘러 밤낮이 지나가고, 하루하루 흘러 그달그달 그믐이 빨리도 지나간다. 한 달 한 달 바뀌어서 문득 다음 해가 이르고, 한 해 한 해 지나가 문득 죽음의 문에 이른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대중스님들 모두 원력을 세워 각자 수행의 길 무탈하게 걸어가시길 발원합니다,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낸 선재동자가 대승의 마음으로 하심하며 매번 새롭게 발심하는 것처럼 우리도 일상의 삶 속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모두 수행임을 잊지 않고 매일 새롭게 자기 자신을 점검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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