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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중관 관심 관조 고양이가 쥐 잡듯이 닭이 알을 품듯이

性悟 | 2011.02.24 22:47 | 조회 3766
유식과 중관 관심과 관조 닭이 알을 품듯이 고양이가 쥐 잡듯이|나의 불교
性悟 | 등급변경 | 조회 12 |추천 1 |2010.10.31. 14:22 http://cafe.daum.net/gusan00/RTPW/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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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과 중관 관심과 관조 닭이 알을 품듯이 고양이가 쥐 잡듯이 무저선

2010/10/28 09:14 수정 삭제

복사 http://blog.naver.com/anwjtjs/150096280679

 

관심은 마음이 보는 공부법으로 마음을 보는 공부법은 아닙니다 마음이 보지 마음은 보이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이 내 몸안으로 들여다 보는 공부법을 관심법이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오온도 나의 마음의 향함으로 향하니 내가 즉 마음이 내 몸안으로 향하니 내 몸이 오온의 굴택이 되게하여 내가 내 몸안을 보는 것입니다.그래서 관심에는 내관법인 지관법인 위파사나와 사마타인 단전주 즉 유식 중관과 명문화를 관하는 관조가 있다

즉 내가 내 몸안의 명문화를 내가 즉 마음으로 즉 내 마음으로 명문화를 보아서 삼독과 육적이 출입을 못하게 명문화를 단속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문이 있다 그문이 나의 양 젖꼭지 가운데의 命의 門이 있다 그 문으로 내가 출입을 한다 그런데 그문으로 도적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그 문으로 도적들이 못 들어오게 마음의 문을 단속하는 것이 관조이다 즉 마음으로 나의 양젖꼭지 사이 命門을 관하는 것이 도적들이 내 안으로 못들어오게 고양이가 쥐 잡듯이 관하는 것이 관조이다
 
이것이 옛 선사들의 마음을 잘 단속하라는 법문입니다.

그리고 명문화를 돋구기위해서  명문에 반드시 쌀알 만한 뜸을 뜨면은 명문화가 돋구어져서 관심의 힘이 생깁니다.이것이 마음의 힘을 키우는 법입니다.

반드시 명문에 뜸을 뜰때에는 쌀알만한 뜸을 뜨야 합니다 이것이 마음의 힘을 키우는 법이다 관법의 힘이 약하면 공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명문화를 북돋우는 명문뜸을 아주 쌀알 만하게 많이 뜨면 나의 마음의 관하는 힘을 키우는 법이다



그리고 mbsrd을 무기를 할때 내가 즉 마음이 즉 내 마음이 부처입니다.나입니다.그런데 보이는 어떤 느낌을 잡고 그 분위기를 잡고 고요한 경계를 잡고 나라고 합니다.그런데 이것이 마입니다.고요한 것도 마여서 고요한 경계라고 한 것입니다.경계가 마이니까요.나는 보는 것이 나이지 보이는 것은 나의 명문화로 들어온 도둑입니다.그러니 그 놈들이 활동을 하다가 멈추어서 상황을 보는 것입니다.이 순간 보이는 놈을 부처로 생각하면 그 도둑이 부처라고하면 내가 니라는 말인데 하면서 나의 진기를 나의 인연을 먹으니 도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아직 내가 공부가 덜되었으니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mbsr즉 무기를 하면 이런 마를 잡고 있어서 이를 부처라고 보나 이는 마이고 부처는 보는 놈이 부처입니다.보는 놈이 나이지 보이는 놈은 마입니다 마치 우유빛 촉감의 촉촉하고 고요한 느낌을 나로 알고 있으면 공부가 안됩니다 그 우유빛의 감촉이 고요한 느낌을 들게하는 것이 삼독과 육적이 나를 속이는 짓입니다 그것을 잡고 나라고 하면 안됩니다 나는 잡히지가 않습니다 나는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잡고 내가 느낍니다 나는 오온의 주체이지 오온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관조로 명문을 관하면 그러면 느낌이 막 다르게 보입니다.이것은 삼독과 육적이 교대로 여러분을 교란시키는 술입니다.느낌이 어떨때는 우유같고 어떤때는 맑고 어떤 때는 고요하고 어떤때는 가슴이 콱 막히고 그런것이 삼독과 육적이 교대로 나를 교란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독과 육적이 내 안으로 못들어오니 나를 교대로 교한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계속 관하면 관의 힘에 제압이 되어서 조용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들어옵니다 그래도 계속 하면은 또 조용합니다 공부를 하는 과정에 이런 과정의 연속이 관조의 공부법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관조로 공부를 하면은 이제는 가슴에는 조용합니다 그러다가 머리에서 생각이 일으납니다 이것은 내가 일으킨 생각이 아니라 삼독과 육적이 나에게서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 머리를 감싸고 일으키는 마음이지 내가 일으킨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에 속으면 공부가 안됩니다 내가 명문을 관하다가도 관조를 하다가도 머리에서 생각이 일으나면 그것은 내가 일으킨 망상이 생각이 아니라 육사외도가 내 공부를 방해하기 위해서 일으킨 마음입니다 이때 머리에서 생각이 일때 아 내가 공부가 잘 못 하여서 머리에서 생각이 일으난다고 잘 못 알면 공부를 못합니다 이때 아 머리에 마가 붙었구나하고 계속 명문을 관하시면 또 머리가 조용합니다 그러다가 또 머리에서 생각이 또 일으납니다 역시 마가 다시 내 머리에 온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관조를 하면은 또 머리에 조용합니다 이것이 관조를 공부하는 연속의 과정에서 일으나는 가슴과 머리에서의 생각과 망상입니다 여기에 속으면 공부못합니다

 

그래서 계속 관하여서 관하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자성체가 관의 힘에 달아올라서 힘이 자꾸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자꾸 맑아지고 자꾸 깨어지고 경을 보면 새롭게 보이고 이제껏 해석했던 경이 선시가 다시 바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관하는 힘이 자꾸 커지면 안으로는 나의 공부가 되고 밖으로는 세상사가 왜 이렇게 돌아가고 왜 전쟁이 나고 하는 것도 짐작이 가는 것입니다 알기까지에는 많이 공부해야 겠지요 저도 완전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공부법은 압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올립니다


그런데 이들이 여러분들이 화두를 들면 관심을 안하고 화두를 들면 머리에서 망상이 가슴에서 감정이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그러니 이들이 망상 번뇌이니 불교에서는 삼독이니 육적이니 망상이니 번뇌니 하면서 점잖게 말한 것입니다 사실은 그 망상과 번뇌가 육사외도들이 나를 육도윤회시키는 마음이고 생각이지 내가 일으킨 생각이 아니고 나에게 누군가 들어와서 일으킨 마음이고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화두를 들어보십시요.삼독과 육적이 내 안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그러다가 관조를 해보십시요.삼독과 육적이 활동을 하는지.....내 안의 부처라는 말이 있지요.말이 맞습니까? 여러분은 선도리로 들으면 맞습니다.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안에 부처는 있기는 있습니다.내가 부처인 것은 다 알고 내 안의 부처는 잘 몰랐지요.내가 내이지 내안의 부처가 여러분들을 죽이는 삼독과 육적입니다.아니라고요.그러니 잠을 자도 품고 자는 부처가 여러분을 도적질 해먹는 육사외도의 우두머리 서옹이입니다 백양사 운문암에 있었던 서옹이 입니다 그러니 잠을 자는 내가 부처이지 내가 공부를 안해서 나의 가슴으로 침입해 들어온 내가 잠을 잘때에는 관조가 안되기에 나에게 안기어 나를 도적질 해먹는 내가 품은 부처는 나의 도적인 서옹이입니다 이 서옹가 나의 가슴에서 일으키는 촉촉한 우유빛의 느낌을 안고 공부한다고 하는 것이 무기이며 그것이 지금 미국에서 하는 공부법이라고 하는 mbsr입니다 그러니 관조를 하면은 이런 증상은 없으집니다

그러니 내가 내다하는놈이 나이긴 하나 내가 다 못챙기기에 나도 있고 참나도 있지요.이제껏 여러분들이 내다 내다한 것은 분명 나이되 내가 챙기지를 못했으니 껍데기 뿐이더라.내가 죽으면 내가 못챙겼으니 내 업 내가 못챙기니 명부전에서 다 찾아주더라.그런데 사람몸을 받고 사는 동안에는 육적이 넣어주는 데로 살더라.그래서 육도윤회라 하는 것입니다.육적이 넣어주는데로 육취로 사니 육도윤회라는 것입니다.그래서 공공의 업인 것입니다.그래서 대아입니다.내가 내업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삼독과 육적이 지구를 조종하기위해서 마음데로 넣었다 뺐다하더라는 것입니다.그래서 공공의 업이더라 그래서 대아더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개 돼지만도 못하게 보이니 불보살님들이 역행을 하면서 까지 다시오셔서 중생제도를 하시지요.



그런데 관심을 하면 바른 공부를 해 보니 분명 내가 산 것이 내가 분명 살았으되 내 살림으로 안되고 다빼앚기어서 내가 내가 아닌 것이지 즉 내가 껍데기 뿐이더라는 것입니다.그래서 관심을 하니 삼독과 육적이 보여서 내가 내것을 챙기니 이것이 참나이구나해서 참나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다 중생심이 있어서 중생견으로 쓴 자비입니다.이런 글 한번 천기누설하면 이런 글쓰는 사람은 어떤 상황인지 아십니까? 이제껏 닦은 공력을 마들이 사들이 다 먹게됩니다.하지만 아는 사람은 내 인연만큼만 쓰고 저는 몰라도 알기에 막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저는 이는 몰라도 사는 아는 만큼은 알기에 이글을 쓰도 되는 것입니다.하지만 저도 공력의 소모는 있으나 단전주를 하면서부터는 괞찮습디다.그래서 마음이라는 말만으로는 중생의 병이 잘 안 나으니 참마음이라는 말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로 여러분들을 죽이는 것입니다.저도 그동안 죽었고요.제가 알은 것도 몇년 안됩니다.저는 깨치지는 못했어도 여러분을 보면 육적이 보이고 여러분말을 들으면 육적이 보이고 여러분 글을 보면 삼독과 육적이 보일 정도의 공부는 했습니다.그러니 진제도 유혹하지요.거짓이라고요.



내가 내이지 내 안의 부처는 내가 아닙니다.내 안의 부처는 삼독과 육적입니다.여러분들이 끌어안고 있는 부처가 내가 아닙니다.참 교묘하지요.그래도 모르시겠습니까?내가 끌어안은 부처를 내부처라고 보는 견으로 수행하는 것이 무기입니다 mbsr입니다

관심을 하다가 잠시 화두들어 실험한다고 내 수행 어떻게 되는거 아닙니다.실험하면 금방아실수 있습니다.저도 실험을 해서 글을 오린 것입니다.그러니 알게 됩디다.





관심법을 할때 망상이 생깁디까?

명문화를 단속하여 여러분이 마음을 밖을 향하던 오온의 마음을 안으로 향하니 몸이 굴택이 되니 선원이되게 하여 선정으로 마음을 단속을 하니 명문화를 관하여 마를 단속을 하니 이때에는 머리에 가슴에 망상과 감정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가 공격을 해오는 망상과 번뇌는 있습니다 그래도 아 마가 왔구나 하고 계속 관심을 명문을 관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도 사랑하고 생각하고 다 합니다.이때의 나의 작용과 위의 망상과 감정은 다릅니다.

여러분들이 나의 마음의 작용이라고 한 생각이 행동이 마가 일으킨 것이란 것을 여러분들도 수행이 더 되시면 아시게 됩니다.그래서 제가 먼저 알아서 여러분들께 서옹 진제 혜국 법전 성철 만공 전강 송담 청화 철웅 무비 강인봉 양진석 정두병 대원문재현 춘당이황우 숭산 등이 제가 공부를 해보니 제 공부경계에서 다 아니더라는 말씀입니다.그러니 여러분들이 빨리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관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관조에 관은 내가 즉 마음이 즉 내 마음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내 눈으로는 밖을 향하면 觀은 되어도 見은 되어도 내 몸밖으로 아무리 照를 해보십시요.내 몸밖에서는 아무리해도 조가 안됩니다.햇살은 照가 되지만 나는 아무리해도 내 몸밖에서는 照가 안됩니다.그래서 파계사에 日光東照라는 편액이 있는데 내 몸 밖에서는 아무리 해도 조는 안됩니다.도인은 모르지만 안광이나 백호광명은 照가 되니 말입니다.그런데 우리 중생은 내 몸 밖에서는 照가 안됩니다.



그런데 내 몸안으로 한 번 보십시요.내 몸안에서는 照가 됩니다.내 마음이 비춰지지요.내 몸 속으로.내 몸안에서는 내 마음이 향하는 심로가 보입니다.보인다고한 것이 照입니다.한번 해보시고 생각해보십시요.내 몸안에서는 照가 됩니다.왜냐하면 내 마음이 보는 내 몸안은 살이 있으서 그 살을 스치는 마음이 안으로 관하면서 살을 스치는 느낌을 照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觀照가 내 몸안을 비춘다는 것입니다.무엇이 내가 즉 마음이 즉 내 마음이 내 몸안을 비춘다는 것입니다.그러니 오온이 안으로 향하지 않고서는 照가 안되지요.내가 마음이 내 몸안으로 향할때 나의 오온도 나의 마음을 따라 내 몸안으로 향합니다 그래서 나의 몸이 오온의 향함이 밖으로 방사를 하다가 안으로 꺾여서 향하니 이때 내 몸이 오온의 굽은 집 즉 屈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몸이 이제서야 선원이 되고 선방이 되고 법당으로서 바로 잡혀져서 이대부터 나의 법당을 장엄하는 것입니다 내 몸안을 장엄하는 것입니다 나의 불사를 하는 것입니다 바깥의 법당의 불사를 하는 것도 나의 불사를 내 몸안을 불사를 장엄을 하고 그것이 드러난 것이 바깥의 대웅전이고 법당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나를 불사를 햐야 합니다

 

우리가 비오는 날 안으로 촉촉한 젖을 때는 내가 내 몸안을 느낍니다.그리고 라디오를 들을때에도 이런 느낌이 듭니다.그런데 텔레비전을 볼때에는 안됩니다.그래서 바보상자인 것입니다.그래서 삼독과 육적이 바보상자인줄알면서도 여러분들이 텔레비전을 보니까 도력으로 여러분들의 진기를 마음을 인연을 먹는 것입니다.



지금 실험해보십시요.텔레비전보시며 마음을 단전에 두고 화두를 들어보십시요.이제껏 느꼈던 텔레비전을 보면서 느꼈던 희로애락애옥욕의 七情이 생기는지..... 지금 해보시면 당장에 아실수 있는 것입니다.이래도 제가 사고 마에 홀렸고 아니라고요. 지금 텔레비전으로 시험해보십시요.여러분의 가슴에서 아무리 전에는 슬픈 장면에서 슬픔이 기쁜 장면에서 기쁨이 생기는지.여러분이 마음을 안으로 안챙기니 여러분들의 명문화로 마들이 사들이 들오와서 여러분들을 죽인 것입니다.이래도 제가 아닙니까?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시면서 명문화를 관하는 관조를 해 보십시요.그런 감정들이 들어오는지 이것이 마음을 단속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무기는 여러분들이 관하는 놈이 나인데 관은 되는데 그 다음의 공부를 몰르고 안 가르쳐주고 해서 무기를  하는 것입니다.혜거한테 백날가보십시요.가르쳐주는가. 혜거가 알아야 가르쳐주지. 대원한테 가보십시요.가르쳐주느가? 대원문재현은 알면서도 안가르쳐줍니다. 여러분을 죽이기위해서.....혜거스님은 몰라서.....



관조를 할때  명문화를 관할때 명문화에서 깔리는 그 느낌을 부처라고 잡고있고 안고있어면 빼앚기게 됩니다 그러니 보는데만 할 것이지 느낌이나 경계는 아니다하고 공부하시면 됩니다.즉 내가 내부처를 부처라 안하고 안고있고 잡고있고 드려다보고 감독 감시하는 놈을 부처라고 하니 그놈이 "내가 니라고?" 하면서 나의 것을 먹습니다.

 



그래서 고양이가 쥐잡듯이 하는 것입니다.관심을 하면 그 상태가 고양이가 쥐잡듯이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고양이가 나인데 쥐를 나로 보니 그 쥐한테 당하는 것입니다.쥐가 내보다 더 닦은 도둑놈이기에..... 쥐를 고양이로 보니 내가 공부가 안되었으니 쥐한테 당하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나입니다.

 

그리고 무기는 내가 즉각 깨닫는 법으로 깨닫습니다 돈오입니다 하지만 공부의 힘이 약해서 더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점수를  해야 합니다 그 점수법이 단전주입니다 현각스님처럼 청안스님처럼 틱낫한스님처럼 미국의 mbsr처럼 그런데 이것에는 定에 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慧가 안생깁니다 그래서 乾慧라고 합니다 이 상태에서 마음을 안으로 향하는 단전주나 관조를 하면은 정이 생기며 혜가 생기나 이것을 안하니 건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화두만 들어도 정혜쌍수가 되는데 화두도 안 드니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성적적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냥 적적한 상태만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기입니다 즉각 깨닫는 법 그리고 mbsr 틱낫한 라마나마하리쉬가 무기를 숭산이 무기를 대원 문재현이 무기를 퍼떠리는 놈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단전에두고 화두만 들어도 됩니다.그러면 화두만 들면 무기는 아니니까요.단전주가 정혜쌍수입니다 단전주만 하여도 무기는 아닙니다

 

 默照는 무기와 다릅니다 묵조는 바른 수행법입니다 그러면 묵조가 어떤 공부법일까요 하지만 이것은 저의 일이고 여러분들은 묵조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묵조의 默이 묵언수좌의 공부법이며 活眼이며 천자암의 살림살이입니다 묵조의 살림살이가 청삽살개입니다 甲戌이 청삽살이여서 청삽살이의 살림상이이며 저의 살림살이입니다

위의 글은 관조의 중관의 공부법의 글들입니다 고양이가 쥐 잡듯이 하는 공부법입니다 그리고 내관법에는 관심법에는 두가지의 공부법이 있습니다 관조 중관 이 공부법이 위의 명문을 관하는 공부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지관법 유식 즉 단전주입니다

그리고 지관법 유식 즉 도가에서는 단전주라고 말을 하지요 그리고 경봉스님의 가르치심에도 단전주가 나옵니다 그래서 지관법 유식 즉 단전주가 닭이 알을 품듯이 하는 공부법입니다

心生이 性입니다 그래서 性으로 공부를 합니다 見性법입니다 이것이 發心입니다 출가입니다 나의 집인 火(심장火)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와서 단전으로 갑니다 이것이 一行입니다 一인 단전으로 가는 것입니다 단전주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심생입니다 그러면 종종법도 같이 생하는 것입니다 종종법도 같이 단전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법이 나의 모든 인연입니다 나의 諸法입니다 그러니 一道萬行이라 一道에 만이 가니 나를 포함해서 만이니 나는 心이니 心이 하나이고 종종법이 구천구백구십구이니 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도만행인 것입니다 그러니 종종법인 구천구백구십구도 생해서 단전으로 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생즉종종법생입니다 이것이 火降이며 觀이며 慧이며 先이며 無이며 槃이며 生이며 위파사나경계입니다 다 같은 단전주인 일심법의 무위법의 공부법이나 인연따라 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나의 마음은 즉 心은 단전까지만 내가 念을 하기에 나는 단전까지만 갑니다 그러면 사마타가 일으납니다 이 사마타경계에는 내가 멸한 경계입니다 즉 나의 마음이 住하지를 않습니다 단전주만 하니 단전까지만 나의 마음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마타경계에는 내가 없는 멸한 경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타경계는 심(내가)이 멸한 경계입니다 그래서 이 경계는 진여경계입니다 그래서 심이 멸하니 종종법도 멸한 경계라는 것입니다 이 사마타경계가 수승의 경계여서 나의 수화기제 장부인 신장에서 다 거르므로 滅한 경계인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제외한 구천구백구십구가 멸한 경계로 사마타가 일으납니다 그래서 심이 멸한 즉 종종법도 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경계에서는 내가 가는 경계가 아니고 구천구백구십구인 나의 諸法이 올라갑니다 나의 천궁으로 백회로 그래서 나의 인연을 봉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衆이 善으로 봉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衆生이라는 글도 명사가 아니고 무리가 나다입니다 내가 나니 같이 나의 무리도 같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생즉종종법생입니다그리고 이것이 惡경계입니다 이것이 染경계입니다그래서 중을 선으로 봉행을 하니 중선봉행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경계가 멸한 경계입니다 이 경계가 汚한 경계입니다 그래서 물이 고이니 맑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滅한 경계가 水昇이며 止이며 智이며 後이며 有이며 若이며 死이며 사마타경계입니다

 

그래서 위파사나를 할려고 하면 나의 심장에 있는 나의 만연이 魂이 許魂작용이 일으나서 즉 나의 심장에 있는 나의 衆들이 즉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이 許魂작용으로 사마타가 절로 일으나는 것입니다 심장에서 관만 할려고하면 신장에서 지가 일으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공부하신 사띠 일심법 지혜작용 프라즈나 진리의 수레바퀴입니다 그 도는 기운으로 나의 마음을 다스려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몸의 기운을 이용하니 생멸법이고 여래선이나 생멸멸이하야 적멸위락이 되기에 조사선으로 내관법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중들이 나의 단전으로 향한 그 마음에 나의 衆들도 같이 심장의 집에서 나오니 衆이 나오니 즉 衆이 生하니 이것을 중이 생한다 중이 난다 그래서 衆生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것을 모르기에 衆生이 명사화되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공부법이 생멸법이고 여래선경계이고 여래선경지이나 여래선경계가 다하고 나면 조사선경계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관심법에는 내관법에는 관조 중관의 공부법인 고양이가 쥐 잡듯이 하는 공부법이 있고 지관법 사띠 유식 위파사나사마타의 단전주의 공부법인 닭이 알을 품듯이 하는 공부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인연따라 내가 하고 싶은 법으로 공부하시면 되십니다 그런데 관조 중관은 조용히 공부하기에 좋고 즉 스님이나 안정된 상태에서 안정된 생활에서 공부하기에 좋고 지관법 사띠 유식 위파사나사마타의 단전주의 닭이 알을 품듯하는 공부는 사회생활하면서 일하면서 하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전주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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