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법문

상대적 개념인 가난과 부...(학장스님)

가람지기 | 2005.12.30 15:14 | 조회 1860

평소에 자신의 가난함을 자랑삼아 떠드는 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것을 본 또 다른 한 스님이
생각하기를 “저 스님은 게을러서 가난할 뿐” 이라고 판단하고 게으른 가난이 아니라 선택한
가난으로 수행을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청빈은 훌륭한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선지식들이 한결같이 수행자는 가난하고 청빈해야 된다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수행자에게 있어서 청빈이 왜 중요한지 그 속뜻을
다 함께 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수행자가 가난하고 청빈해야 된다는 본래 의미는 수행자는 재물을 탐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재물을 애써 구하지 않고 부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가난해야
된다는 의미는 아니며 가난에 집착하라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부와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며 수행자는 일체의 상대적 관념과 현상을 넘어선, 그것의 합일과 동등의 세계를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수행자는 굳이 가난이나 부를 선택하고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하거나 부자인 것은 상대적 현상과 모습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즉, 가난과 부는 절대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비교 대상에 따라서 부자이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절대로 가난하거나 절대로 부자일 수가 없습니다. 가난과 부는 상대적 개념이며 상대적인 것은 그 실체가 空하므로 집착할 것이 못됩니다. 따라서 수행자가 가난함을 자랑하고 집착하는 것 또한 부를 자랑하고 집착하는 것 만큼이나 허황되고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금강경』에서 수행자는 법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하물며 가난에
집착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수행자의 드러난 겉모습이 가난하거나 부자인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행자의 마음이 가난과 부의 상대적 세계에 집착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만일 수행자의 의식이 가난에 집착되어 있거나 더욱이
가난을 자랑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꾸밈이고 위선이며 어리석음입니다. 청빈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한 수행자는 애써 가난을 선택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또한 굳이 인연한 재물을 거부하지도 인연에 없는 재물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인연한 재물을 효과적으로 나누고 사용할 뿐입니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재물은 그 자체가 좋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물질의 진정한 가치는 그 올바른 쓰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재물을 탐하지 않는 방편으로 가난을 선택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넘어서서 적극적인 방법으로 자신과 인연한 크고 작은 물질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효과적으로 공동의 선을 위하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사용할 것인가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나아가서 수행자는 부와 가난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재능의 우월을 남들과 비교하는
일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수행자의 재능이나 시간 등 일체의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모두는 궁극적으로 중생의 이익과 깨달음을 도모하는 일에 쓰여질 때 그 본질적인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는 재물뿐만이 아니라 모든 정신적, 물질적 인연들을 오직 중생구제와 깨달음을 위하여 사용할 때, 그때야 비로소 소유하는 것과 소유하지 않는 것, 얻음과 버림의 상대적 관념에 속박되지 않는 대자유를 성취할 것입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