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물 들인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하고.
아마도 우리 스님들이 운문사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중물이 들었다느니, 중물이 안들었다느니 하는 소리일 것입니다.
중물을 들인다는 말은 바로 단체, 무리의 물을 들인다는 뜻입니다. 혼자가 아닌 무리의 물을 들인다는 것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 가는 물을 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출가한 스님들에게 대중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대중생활을 통해서 자기만의 아집과 독선적 태도를 버리고 조화와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물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님들이 운문사와 같은 곳에서 단체생활을 하는 일차적 목적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와 존중으로 극복하면서 화해하고 타협하는 것이지, 서로를 속박하고 제한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중물은 마음과 정신의 내면세계를 물들이는 것이고, 겉모습은 내면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풍겨나는 것입니다.
중물을 들인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즉,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중생들의 이익을 생각하는 이타심으로,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는 마음으로, 일신의 안락과 명예를 구하는 세속적 관심에서 중생구제의 원을 세우고 깨달음을 구하는 보리심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중물을 들이는 구체적 실천방법에는 팔만사천 법문이 모두 해당되지만 굳이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한없는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부처님의 마음 네가지(사무량심:자비희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즉, 한량없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慈], 남의 고통을 아파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려는 마음을 내며[悲], 상대방의 행복과 성공을 진심으로 원하고 기뻐하며[喜], 이익과 손해, 사랑과 미움을 구별하지 않고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대하는[捨] 것입니다.
자비심은 분노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상대방의 행복과 성공을 질투하지 않고 진심으로 기뻐하기 위해서는 탐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지 않고 친구와 원수를 구별하지 않고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대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 의존해 존재하는 동일체임을 아는, 즉 연기緣起와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물을 들이는 과정은 탐욕과 분노를 없애고 자비를 실천하는 과정이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연기와 공의 지혜를 깨달아 가면서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인 것입니다.
결국 중물을 들인다는 말은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서 상대방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이며, 종국에는 상대방과 자기가 동등하며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아가는 훈련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중물을 들인다는 말은 출가한 스님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지만 그 뜻을 알고 보면 출가자든 재가자든 마음공부를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고 수도하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