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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시대의 선지식 (학장스님)

가람지기 | 2005.12.30 15:30 | 조회 2515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삶을 바쳐서 따르고 싶은 선지식을 목말라 합니다. 또한 교육현장에서는 진정한 승승과 진정한 제자가 없다고 한탄합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워하거나 한탄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합니다.

과거 나라와 나라의 교류가 한정되어 있고 문화적 접촉이 오늘날과 같지 않던 시대에는 한 사람의 선지식이나 스승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하나의 문화권이나 통일된 가치관 속에서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지구촌 시대입니다. 동서양이 뒤섞이고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또한 너무나 변화했고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다양해진 물리적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신세계도 함께 다양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가 하루 세끼를 반드시 밥하고 국만 먹겠다고 고집하거나 반대로 빵만 먹겠다고 고집한다면 본인 스스로는 물론이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불편을 주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종교의 우월성과 절대성을 고집하고 다른 종교를 업신여긴다면 그 또한 엄청난 갈등과 싸움을 유발할 것입니다.

단일화되고 획일화된 과거에는 옳고 그름이 명확했던 흑백논리의 시대였기에 선지식과 선지식 아닌 것 또한 분명히 구분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과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에서 보듯이 선악의 기준은 다분히 보는 시각과 이해에 따라서 달라짐을 우리는 날마다 체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상대적, 현상적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진정한 선지식이나 스승을 찾는 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느 특정한 사람만이 선지식이거나 스승으로 특별히 대접받는 시대가 아닙니다. 만나는 모든 이가 선지식이며 스승입니다. 참된 모습을 본받을 수 있도록 보여지는 이도 훌륭한 스승이지만 그릇된 모습을 보고 닮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는 이도 훌륭한 스승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과거 단편적이고 고정된 시대를 벗어나서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시대를 향해서 끊임없이 돌진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선지식이나 스승 또한 더 이상 고정적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 때 그 때 보이는 모든 이, 만나는 모든 이, 일체중생이 모두 선지식으로, 스승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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