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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거산 운문사

법문

나로부터의 자유 (학장스님)

가람지기 | 2005.12.30 15:32 | 조회 1839

학인스님이 물었습니다.

“대중생활에서의 불협화음은 결국 아집에서 오는데 어떻게 하면 아집에서 벗어나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하고.


아집我執은 말 그대로 ‘나’를 붙잡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떤 ‘나’를 붙잡는다는 것인가? 그것은 ‘나’에 대한 생각이고 관념이며 믿음입니다. 즉 내가 '나‘라고 믿는 생각을 붙잡고 그 생각에 아예 붙어버린(집착) 것입니다. 그럼 아집의 근본, 즉 ’나‘라고 믿는 생각에 매달려서 붙어버린 그 마음작용의 주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유식에서 말하는 제칠식인 마나식입니다.


마나식은 계산하고 생각하는 마음작용을 말합니다. 무엇을 근거로 생각하고 계산하는가? 마나식은 세세생생 쌓아온 업행(아뢰야식), 다시 말해서 무수한 과거 생부터 경험해서 네 가지 번뇌, ‘나’가 잘났다든지 못났다든지 하는 생각(아만), 좋고 나쁘다는 생각(아애),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다(아견)는 어리석음으로(아치) 잘못 계산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에 대해서 잘못 계산하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는가? 계산하고 생각하는 마나식의 작용은 아라한의 지위나 세간을 초월한 도의 경지에서 멈추는 것이 가능합니다. 수행도중 고도로 집중된 몰입의 순간에 잠깐 생각이 멈추는 일이 가능하겠지만 본질적으로 깨달음에 이르지 않고는 계산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마음이 어차피 계산하고 생각하는 마음작용을 피할 수가 없다면 올바로 계산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 현명합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일어나는 생각의 연속, 생각의 흐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의 연속에는 항상 네 가지 번뇌가 함께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만을 예로 들면, 한 순간 ‘나’가 잘났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자동적으로 이어지는 감정은 우월감이며 우월감은 다시 남을 업신여김으로 드러나고 그 결과 남의 아만을 자극함으로써 갈등과 고통을 유발하게 됩니다. 반대로 ‘나’가 못났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열등감이 이어지고 열등감은 패배감을 불러 일으켜서 남의 아만과 부딪치게 되고 결국 미움과 분노를 낳게 됩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과 계산의 연속이고 흐름입니다.


그리고 어리석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의 흐름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한 순간 잘났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곧장 그 생각의 공함을 인식하거나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반대의 생각인 못난 점을 떠올림으로써 우월감의 발생과 연속을 차단시키고 마음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또 못났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그 또한 공함을 인식하거나 그 수준이 안 되면 자신의 잘난 점을 떠올려서 열등감의 발생과 연속을 차단시키고 마음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이것이 바로 네 가지 번뇌로부터 자유로와지는 훈련의 시작이며 아집을 버리고 조화와 공존을 체득하는 마음수행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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