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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거산 운문사

법문

있는 그대로의 삶 (학장스님)

가람지기 | 2005.12.30 15:36 | 조회 1763

학인스님이 물었습니다.

농사일이다 뭐다 해서 이것저것 할 일이 많고 몸이 고단해지다 보면 경전공부를 하고 싶은데 자꾸만 나태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태함을 극복하고 경전공부를 잘 할 수 있겠느냐고.

몸이 피로하면 쉬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나태한 것이 아닙니다. 몸이 정말로 쉬어줄 것을 요구하는 필요한 휴식과 나태함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또 부처님 가르침을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데 게으름이 생긴다는 말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부처님 공부는 따로 조용한 시간을 필요로 하거나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수행자에게는 말하고 침묵하고 앉고 서고 눕는 것이 다 공부의 순간입니다. 경전공부는 따로 시간을 내서 읽고 외우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듣거나 보고 그 다음에는 행하는 것입니다. 경전의 내용들을 가장 확실하게 잘 이해하고 많이 알고 싶으면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순간순간의 느낌과 행동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농사일로 힘들면 힘든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게으르거나 나태하면 게으르고 나태한 그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게으르고 나태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도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나태한 것은 나쁘다는 판단을 하기에 앞서서 게으른 마음을 먼저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게으른 마음을 보게 되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나 노력이 없어도 저절로 게을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행자가 게으름이나 나태함을 경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무조건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하되 무엇을 열심히 하고 왜 하고 어떻게 하고 언제 하는 것이 좋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노력한 만큼 그 효과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이 열심히 한다고 남들도 자기와 같은 방식으로 열심히 할 것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고 함부로 다른 이의 수행을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게으르거나 나태함을 무조건 바꾸려고 하지 말고 게으르고 나태한 그 마음의 상태를 잘 들여다봄으로써 그 원인을 올바로 아는 것이 바로 게으름과 나태함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부지런하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새 뿌리를 심고 싹을 틔우는 힘과 거름을 만드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이치를 알아서 나태함을 바로 열심히 정진하는 수단으로 삼게 되면 경전의 말씀을 배우고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외우고 기억할 필요는 더욱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전은 나태함과 정진이 완전히 다른 둘이 아니라 이름이 다른 하나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수행을 위해서는 매 순간 올바른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올바른 선택은 항상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면 그곳에 바른 선택이 숨어 있습니다. 일단 바른 선택을 발견하게 되면 그 다음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될 것입니다. 그 길이 여러분을 성장과 행복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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