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법문

아름다운 공양

가람지기 | 2007.04.13 10:49 | 조회 1897

엊그제 내린 비로 이목소 물이 넉넉해졌습니다. 비 개인 오후, 생각 없이 푸른 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처처에서 여름안거가 무르익어가고 있음을 상기 했습니다.

가지산에서 천성산에서 오대산에서 그리고 호거산 기슭에서도, 눈 푸른 납자들은 촌음을 아끼며 정진에 힘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흘러가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헛되이 시간을 보내며 시주물만 축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잠시 자신도 챙겨볼 겸 供養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공양이란 범어 Pūjanā에서 온 말로 供施, 供給, 供이라고도 번역됩니다. 음식이나 의복을 삼보, 부모, 師長, 망자에게 공급하는 일입니다. 물론 공양 종류와 방법과 대상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분류됩니다. 공양이란 주로 신체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만, 정신적인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어찌되었건 공양이라고 하면 우선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떠올리게 됩니다. 부처님은 80의 생애를 통해서 다양한 대상들로부터 여러 가지 공양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두 가지 큰 공양을 받았노라고 회고하면서 제자들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는 처음 정각을 이루기 위하여 6년간의 고행 끝에 극단적인 육신의 고통은 수행의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하시고 몸을 씻고 음식을 먹기로 정한 수 그 마을 수자타에게서 받은 우유죽이 최초의 공양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열반의 땅 쿠시나가라로 가실 때 춘다로부터 받은 공양입니다. 이 공양으로 부처님은 식중독을 일으켰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춘다에게 그대의 공양이 내 생애에서 최후의 공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공덕을 찬탄하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부처님께, 혹은 다른 이들에게 무슨 공양을 올릴 수 있을까요?

모든 공양 가운데 法供養이 최상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 보리심에서 끝내 물러나지 않는 공양이 부처님께 올리는 최상의 공양이 아닐까요?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 받는 공양은 어떨까요?

그래서 우리는 공양을 받을 때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현들과 모든 중생에게 차별 없이 공양을 한다면 한량없는 바라밀을 성취하리라.”(上供十方佛 中供諸賢聖 下及衆生品 是三無差別 得無量波羅密)라는 게송을 읊습니다.

푸르름이 무성한 이 여름철에 이러한 공양을 올리고자 노력한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공양은 없을 것입니다.


불기 2549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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