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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현대사회와 여성불자의 역할

가람지기 | 2008.03.21 05:03 | 조회 3178

현대사회와 여성불자의 역할

명성스님

‘53선지식 특별법회’라는 말을 듣고 어떤 법문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우선 53 선지식에 대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실차난타가 번역한 80화엄 7처 39품 중 맨 마지막품인 ‘입법계품’에 선재동자가 문수보살로부터 발심해 남방으로 110성을 지나가면서 53선지식을 만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53 선지식 가운데 유일하게 비구니 스님이 한 분 나오는데 ‘사자빈신비구니’가 그 주인공입니다. 선재동자는 사자빈신비구니가 일광원에서 설법해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 되게 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갑니다. 사자빈신비구니는 선재동자에게 보살도가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사자빈신비구니는 출가자의 이야기지만 재가여성불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유포한 예도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승만부인은 그 나라에 있는 일곱 살 이상의 여자를 교화해 온 나라를 부처님 법이 충만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 여성으로서 먼저 두터운 신심을 갖고 가정에서부터 불교를 가르치고 나아가서는 사회와 국가를 불교로 교화해 대승의 정신을 실현한 본보기라 하겠습니다.


“모성애와 자비행으로 불국정토 앞당겨야”


여성지도자로서 비구니는 의존과 맹종의 누습(累習)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교법을 유포하는 일익을 담당하는 확신과 자부심을 갖고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위한 역군이 돼 왔습니다. 일체중생의 어머니인 관세음보살의 자비사상을 충분히 발휘해 불타의 가르침을 현실 생활에 올바르게 전달할 의무와 사명을 다해 온 것입니다.

전국의 각 승가대학에서는 여성 특유의 교양과 생활 속에 포교할 수 있는 특수 교육이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졸업 후 유치원 어린이 포교, 중고등학생 포교를 위시한 고아원, 양로원, 청소년들의 교화를 담당할 수 있도록 현시대에 부응하는 교육제도를 확립해 비구니들의 교양을 높이고 나아가서는 일반 지성인들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는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비구니의 역할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가 여성불자들의 역할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은 원래 집안의 태양을 의미하는 ‘안해’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집안의 태양으로서 여성들이 슬기롭고 자애로운 자녀 교육을 통해 가정을 이끌어 가듯이 모성애와 자비행이 수행공동체로 스며들어가야 합니다. 여성의 고귀한 자비정신을 만방에 알려 부처님의 평등사상을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가정에서부터 올바른 생활 해나가면서

온화한 표정과 행동으로 이웃 교화해야


만약 지금 이 땅에 부처님이 나타나셨다면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분명 2500여 년 전 인도에서 중생을 교화했던 방법과는 판이하게 달랐을 것입니다. 아마 부처님은 자동차를 타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돌아다니며 포교하셨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만큼 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를 들여다봅시다. 한국불교 신도 대다수가 여성불자이며 비구니 또한 상당한 수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구니는 뒷전에 물러나 있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왔습니다. 비구니 또한 스스로 열등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종단에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간주됐던 시절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대소사암에서는 어린이 포교에서부터 대학생 연합회, 교수불자회에 이르기까지 원활한 포교활동이 불꽃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를보면 우리나라 불교 앞날에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아서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몇 십 년 전만해도 비구니들은 비구강원에 종속돼 비구스님들에게 수학했는데 지금은 여법한 비구니 강원이 다섯 개나 생겨 비구니 강사들이 직접 학인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비구니 선방도 서른두 개나 있고 70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한국 특유의 교육현상으로 다른 나라 비구니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비구니 교수들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포교일선에서 우리 한국 비구니들은 각 병원에서 환자포교를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회관, 양로원, 유치원 등 복지시설에서도 맹렬한 포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세계여성불자협회 회장인 쏘모스님은 “한국의 여성불교가 세계여성불교의 횃불역할을 하고 있음에 크게 감명 받았다”고 하면서 “한국주도로 여성불자 권익신장을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나 티베트에서 수학하면서 12년 동안 히말라야 동굴에서 수행한 텐진 팔모스님도 “7000여 명의 수행자를 가진 한국 비구니는 교육과 수행 면에서 세계 비구니계의 모델이 될 만하다”며 “오랜 역사 속에서 승단을 지켜온 한국 비구니에 대해 감탄하며 배우고 싶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백장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一日不食)’는 가르침으로 제자들을 이끌었습니다. 여성불자들은 누구보다도 이 가르침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가사노동에 종사하면서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비구니 스님들도 여러가지 일을 하며 수행하고, 수행하면서 일합니다. 이런 활동이야말로 우리 불교를 건강하게 하고 우리 가정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부처님 당시의 비구니나 승만부인의 서원을 되살려 우리 스스로의 덕행을 쌓아 확고한 가치관과 사명감을 갖고 인류사회의 횃불이 되고자 하는 끊임없는 정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여성들의 온화한 표정, 친절한 행동, 유순한 말은 가정의 화목을 물론 우리의 이웃들에게 행복의 씨앗을 뿌리는 요소입니다. 한 가정의 행복이 모여서 한나라가 행복하며 한나라의 행복이 모여 온 세계가 행복해집니다. 한 가정의 행복을 좌우하는 어머니 여러분이야말로 온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위대한 힘입니다. 돌아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이 해온 역할과 공덕은 매우 큽니다. 수많은 인재를 기른 것도 여성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앞장선 것도 여성입니다. 여성이야말로 세상의 꽃이며 만물의 어머니입니다. 이런 사실을 자각한다면 여성이 해야할 일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일들을 우리가 해 나갑시다. 앞으로 더욱 정진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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