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법문

날마다 새로운날

가람지기 | 2008.05.26 20:23 | 조회 4917

묵은해를 털고 새봄을 맞이했습니다. 얼었던 나뭇가지 끝에도, 장군평 빈 들판에도 하나 둘 새싹이 터 오릅니다. 새로운 치문반 스님들이 입학했고, 치문반 스님들은 사집반이 되었고, 사집반은 사교반이,사교반은 대교반이 되었습니다. 시작에 임하면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됩니다. ‘올해는 경전을 좀 더 알차게 보아야지’,‘ 올해는 기도를 열심히 해야지’,‘ 올해는 대중을 위해 열심히 소임을 살아야지’제각기 새로운 각오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새로운 시작이란 없습니다. 지금 막 혀를 내미는 새싹조차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만일 지난 겨울 땅속에서 묵묵히 추위를 견디며 조금씩 조금씩 봄을 준비한 씨앗이 없었다면 지금의 새싹은 없었을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어제의 행자가 오늘 강원에 입학했다고 해서, 어제의 하반스님이 오늘 상반스님이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새해, 새 학기란 그저 무한히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을 편의상 구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어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노력하고 애쓰지 않았다면, 비록 오늘 상반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상반스님다운 새로운 면모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설사 새로운 시간과 더불어 우리가 처한 환경과 맡은 역할이 조금 달라져 뭔가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되더라도, 그 느낌은 곧 퇴색되어 타성적이고 변함없는 일상만 남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겨우내 씨앗이 땅속에서 변치 않고 있었던것만은 아닙니다. 땅속에서 씨앗은 하루하루 새롭게변화하고 있었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씨앗이 변화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습니다. 새싹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땅속의 씨앗도 새로운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공성(空性)으로 비어 있듯, 모든 순간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비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 외면적 변화만 바라면서 진정한 자기 수행을 게을리했을지라도, 오늘 우리는 새로운 각오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움이란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새로운 가능성에 자신을 맡길 수만 있다면 새해, 새 학기만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매일매일 모든 순간순간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학인스님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이 새로움으로 빛나는 보석이 되도록 정진하길 바랍니다.

운문지 104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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