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법문

위대한 버림

가람지기 | 2008.07.19 16:14 | 조회 5197

"학인스님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위대한 정의와 큰 깨달음이 바로 일상의 작은 일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한여름 뙤약볕이 몹시 따갑습니다.

나무 그늘을 찾아 연신부채질을 하여도 더위는 좀처럼 가시질 않습니다. 해 마다 찾아오는 여름이지만 갈수록 더위가 심해지는 것을 보아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닌 듯싶습니다. 수 년전부터지구온난화를걱정하는소리는많았지만 우리는 그 변화를 멈추게 하거나 늦추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에 대한 걱정은 말 뿐 우선 더우니 에어컨을 켜야 하고 당장 급하니 대중교통 보다 자가용을 이용 할 수 밖에 없다는 변명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커다란 주장을 부르짖기는 쉽지만 사소한 일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학인스님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위대한 정의와 큰 깨달음이 바로 일상의 작은 일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늘 강조하는 임제스님의 말씀처럼‘ 수처개진隨處皆眞)’이 되지 않으면 종교적 깨달음도 올바른 사회정의도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대중생활은 무아를 실천하는 장입니다. 매일 일어나서 밥 먹고 일하고공부하고 잠자는 24시간의 일과는 그저 무의미 하게 반복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여러분들이 진실로 한 순간 한 순간 자기를 비워버리지않으면 안 되도록 만드는 용광로입니다. 잠시 나의 편의를 생각 해 볼 수도 있고 잠시 “인생은 그런 거야”라고 변명하기도 쉬울 것입니다. 이 렇게 해서 대중스님들과 마찰 없이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마찰 없이 수월 하게 지낼 수 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쉬운 것 만 반복하다보면 삶은 타성에 젖고 도(道)는 저 만큼 멀어져 있을 겁니다.

각박한 대중생활 속에서 잠깐 스쳐 가는 변명을 붙들 수 있고 작은 편리함이라도 저버릴 수 있다면 ‘무아無我)’의 법문은 바로 우리 곁에 있을 것입니다. 오늘 땀을 닦으며 에어컨을 끄는 행동은 오늘 조금 힘들지만 궂은 소임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은 그 어떤 화려한 웅변 보다도그 어떤 감동적인 법문 보다도 지구의 미래를 담보하고 궁극적 깨달음을 담는 법의 그릇(法器)입니다. 왜냐하면 이천 오백년 전 성도(成道)를 이루신 부처님의 깨달음은 바로 왕자의 지위와 왕궁의 부귀영화를버렸던 그 위대한 버림으로 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운문지 105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