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법문

가을, 풍성한 수행의 결실을 기다리며

가람지기 | 2008.11.08 15:13 | 조회 4656

운문사의 가을은 풍성합니다. 은행나무는 하늘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도량 곳곳에는 감이며 대추 등 온갖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도량 밖으로 나가면 밭에는 여름 내내 뙤약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길렀던 곡식이 가득합니다. 백장스님의‘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운문사에서의 가을은 또한 가장 바쁜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을걷이로 여념이 없는 가운데 학인스님들의 수행은 어떻습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자칫 타성에 젖은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이만하면 괜찮다고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지는 않는지 되돌아 보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일군 곡식들처럼 어렵고 힘든 가운데 알찬 수행의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늘 점검하기 바랍니다.

대개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로또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하였거나 한탕 투기로 돈을 번 사람들을 보십시오. 대체로 돈 씀씀이가 헤픕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어서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물을 주었던 사람만 장미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고, 여름철 뙤약볕아래 땅을 일구었던 사람에게만 가을의 수확이 풍성합니다. 마찬가지로 수행도 어느 날 문득 도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가운데 간절하게 노력했던 것만 자신의 몫이 됩니다. 날마다 아침 일찍 예불 드리고 공부하고 밭에 나가 일하는 운문사의 생활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가운데 배우고 실천하면서 터득한 것은 비록 작은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가는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요즘 나라 안팎이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종단 역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예부터 주인이 강하면 그 누구도 감히 집 안을 넘보지 못합니다. 요즘 종단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우리 자신이 좁은 울타리에 갇혀 세상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타성적으로 살아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의 깃발을 높이 세워 파사현정(破邪顯正)을 할 사람은 바로 여러분들 자신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 철저히 수행하고 더 굳건하게 자신을 확립해 가야 할 것입니다. 들판 가득 쌓여 있는 가을걷이 처럼 여러분들의 수행의 자량(資糧)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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