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법문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람지기 | 2009.06.18 10:56 | 조회 5522

 

                                     

                           감사하는 마음으로



                                                                            명성 / 운문승가대학 학장


   들판을 가득 채웠던 푸성귀들도 만산에 울긋불긋했던 낙엽들도 다 져버려 산천이 텅 빈 듯합니다. 그러나 실은 새로운 봄을 준비하기 위해 긴 침묵으로 돌아간 것일 뿐, 산천은 본래 그대로 넉넉하고 변함없습니다.

    운문사에서 가장 큰 연중행사인 김장이 끝났으니 이제 한 숨 돌릴 만도 하지만 사실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여러 행사들로 더 분주해지겠지요. 그러나 마무리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준비이니 분주함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를 소홀히 하면 안되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도 많은 사람들의 수고 덕분에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무사히 잘 지낸 것 같습니다. 사실 온 한해만 아니라 지나온 세월이 다 그랬습니다. 때로 우리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무사히 잘 지낸 것 같습니다. 사실 온 한 해만 아니라 지나온 세월이 다 그랬습니다. 때로 우리는 나만 이렇게 궁핍하고 곤궁한지 불평하고 나는 왜 남들처럼 좋은 부모와 좋은 선생, 넉넉한 환경이 없는지 원망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오늘 이 순간에 무사하게 존재한다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오늘 아침 길거리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았다면 넘어져 크게 몸을 상했을 수도 있고, 만약 누군가가 우연히 그 자리에 없었다면 몹시 나쁜 생각을 품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그들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또는 무심히 건넨 말 때문에, 또는 나를 지켜보는 따뜻한 관심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만들어준, 정말이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알고 보면 나의 존재는 나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가까이는 부모 형제로부터 스승과 도반,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의 덕분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이 미치면 내가 만난 그 모든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의 마음을 느껴보십시오. 그 따뜻함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그렇게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예를 올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운문지 107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