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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원광화랑연구소 개소기념 학술대회

관리자 | 2017.05.10 13:30 | 조회 77

주제: 원광법사와 화랑정신, 새천년 청년정신을 꿈꾼다.

 

 

               “왜 지금 화랑인가?” 


   스님들이 ‘화랑(花郞)’을 들고 나왔다. 그것도 비구니스님들이 화랑이라는 화두를 우리에게 공안으로 던졌다.  공안에 대한 “원광법사와 화랑정신, 새천년 정신을 꿈꾼다.” 라는 설명도 만만하지 않다. 바로 경북 청도 운문사 <원광화랑연구소> 개소 기념 학술대회 이야기다. 

 

 왜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이 남자들의 전유물인 ‘화랑’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을까 궁금해진다. 운문사는 1000년 고찰이다. 원광법사가 1400 여 년 신라의 화랑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내려 준 곳이 운문사 인근 ‘가실사’이다. 가실사는 소멸되어 없어졌다. 원광법사는 운문사의 제1중창주이다. 운문사는 원광법사와 가실사의 인연을 수중하게 생각하고 세속오계가 우리문화의 역사적 보물임을 잘 알고 있다. 운문사는 1994년 ‘화랑오계비’를 세우고 1997년에는 대웅전 벽에 ‘화랑오계 벽화’를 새겨 넣었다. 운문사는 2013년 9월 24일 <운문사 원광화랑연구소> 현판식을 갖고 오는 11월 16일 연구소 개소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1400 여 년 전에는 세간의 청년 귀산과 추항이 출세간의 원광법사를 찾았다. 지금 출세간의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이 세간의 청년들을 만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운문사 원광화랑연구소 현판식 (2013년 9월 24일)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원광법사와 화랑정신, 새천년 청년정신을 꿈꾼다.”라는 주제로 네 사람이 연사로 나선다. 이기동 동국대학교 석좌교수가 기조발표자로 나서  <화랑도의 조직과 신라골품제도>의 상관관계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발표한다. 화랑도는 경주 시내 여섯 部民의 자제들 가운데 15세 가량의 청소년들을 모아 단체를 조직하고, 단체의 대표로는 당시 최고 신분인 진골 출신의 소년을 화랑으로 추대하고, 육두품 이하 일반 백성의 자제들은 화랑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의미에서 낭도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화랑도가 미숙한 청소년들인 까닭에 이들을 훈육 지도하는 교사로서 학식이 있는 스님 한 사람씩을 화랑도에 배치했다. 이것은 종교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당시 스님이야말로 거의 유일한 지식계급에 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광스님(운문사 운문승가대학 학감)은  <원광법사와 운문사의 인연>에 대해 발표한다. 원광법사와 운문사는 과거의 역사적 인연이 현재의 계승적 인연으로 이어지고 그리고 내일의 당위적 인연으로 발전되어 <운문사 원광화랑연구소>의 탄생은  필연적인 역사적 귀결처임을 설명한다. 운문사는 1400 여 년 전 원광법사가 화랑인 귀산과 추항에게 화랑오계를 내려주어 신라 청년정신의 귀감이 되어 신라의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미래에 불교와 청년문화가 융합된 新世俗五戒를 꿈꾸며, 이 시대의 소통과 조화의 새로운 삶의 가치가 탄생시키는 발원지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또한 <운문사 원광화랑연구소>의 탄생은 이 시대 신화랑 새천년 청년정신의 출발이 될 것이라는 기대의 속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박홍식 대구한의대학교 교수(한국유교학회장)는  원광법사는 'Chinese Dream' -中國夢- 을 갖고 중국유학을 떠난 사비유학생이었으나 ‘국가초빙해외인재’의 신분으로 신라에 귀국하여 진평왕에게 ‘성인(聖人)과 같은’ 대우를 받은 당대 최고의 ‘중국전문가’라는 해석을 내어 놓았다. 화랑 귀산과 추항이 원광법사를 인생의 길잡이로 선택한 이유는 원광법사가 시대의 아이콘이며 ‘나라의 스승(國師)’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속오계는 원광법사, 귀산, 추항의 ‘가실사의 역사적 만남’으로 탄생하고 ‘아막성 전투의 임전무퇴’로 신화가 되어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는 주장을 편다.


 니시나카 켄지 (西中 硏二)박사는 <화랑도의 일본 전파설에 대한 경위>에 대해 발표한다. 특히 니시나카 박사는 지난 3월 , 일본 츠쿠바대학 박사학위를 통하여 화랑도가 일본 무사도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17세기 일본 사츠마(薩摩, 지금의 가고시마)번의 청년단이었던 헤고니세(兵兒二才)가 신라의 화랑도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화랑정신의 발상지 한국 청도 운문사에 와서 직접 그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게 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문제로 지적되어온 하야시 라잔의 화랑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사츠마 헤고니세의 세속오계에 대한 전승에 대한 해명이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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