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 보살 성 엽 / 사교반
한 사람의 몸에 천개의 팔과 천개의 눈을 가진 이, 불교에서는 그를 가리켜 관세음 보살이라고 합니다. 어릴적 수없이 많은 팔에 메달린 그의 모습을 처음봤을 때 저는 고통받는 죄인인줄 알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관세음보살이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할 사교반 성엽입니다. 불경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관세음 보살은 부처님 재세시의 인물도, 역사속의 인물도 아닙니다 대반야경의 주석서인 대지도론에 ‘관세음보살은 타방국토에서 왔다’ 라는 말을 근거로 이란 종교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정확한것은 1∼2세기경 대승불교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많은 보살 가운데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관음신앙은 어찌 보면 불교에서 가장 경계하는 무조건 적인 기복신앙의 성격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세음보살님이 항상머리에 이고 다니시는 아미타부처님은 석가모니불 외에 다른 부처님의 존재를 얘기하고 그것은 하나의 절대자를 부정합니다 또한 부처를 이루기위한 보살의 행은 결정되어진 무엇이 아닌, 행 (行)! 그것에 의해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자성불! 즉 여래장사상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가장중요한 그의 원력! 중국송대 이전에는 남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던것이 이후에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함께 같춘 형태로 변화된 것은 관세음 보살이 남성과 여성, 선과 악, 복과 벌의 모든 이원성 뛰어 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승(大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오래전 제가 알던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 죄를 지었고 벌을 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이치가 저를 갈등케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자비로운 인간이였기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평범한 아이에서 범죄자가 되기까지, 긴 시간속의 상처를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알았다는 작은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그동안 믿어온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는 다’던 저의 종교를 의심케 하였습니다 자비와 사랑을 얘기하는 신은 무엇을 근거로 누군가에게 영원한 지옥을 심판하는 것일까...
그러던 중 알게 된 관세음보살님의 서원은 저에게 다른 세상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가 누구든, 나를 믿든 나를 믿지않든, 착한 자이든, 나쁜 자이든, 곤란에 처한 이가 간절히 나를 부르면 나는 그곳이 어디이든 그 앞에 나타나 그를 고통에서 구하리라.’
참으로 오만하고, 또한 참으로 위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의 잘못을 하면 하나의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백개의 잘못을 해도 팔만사천의 손을 준비해 언제든 내밀어 주겠다는 원력!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이 아닌 고통받는 중생! 그 하나 뿐이였습니다 그것이 좋아 저는 절엘 다녔고 법당이 좋아 출가를 했습니다
서양에서 법의 여신 ‘디케’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평등한 정의를 실현하기위해 눈을 가리고 칼과 저울을 사용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두 개의 눈도 모자라 팔만사천의 눈을 사용합니다 그의 눈은 심판을 위한 눈이 아닌 자신을 부르는 이를 ‘찾는 눈’입니다
배고픈 이에게 진리란, 배고프게 된 인과가 아니라 한 조각의 빵임을....자비란 말로써 포장하지 않고 단지 빵을 구하는 이에게 빵을 줄 뿐인 보살의 행(行)!
불교는 인과와 연기를 기본으로 퍼득이는 인간의 마음을 버리라는 지극히 차갑고 냉철한 종교이지만, 한편으론 번뇌를 가진 인간만이 성불을 이룰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익히는 싯타르타왕자의 49년 간 놀라운 가르침의 시작은 고통받는 중생에 대한 연민이었습니다 또한 단지 학문으로만 그칠수 있었던 이야기들을 종교로 승화시킨 것은 선도, 악도, 그저 부처가 되는 과정이라 말하며 감싸주는 보살심이 있기에 가능했을리라 생각합니다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들어본 이름이지만 저를 발심시키고 출가시킨 분이기에 저의 처음 법문자리에선 관세음 보살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저 존경과 선망의 대상일뿐이지만 언젠가 그의 무조건적인 자비원력에 동참하는 그러한 수행자가 되길 기도하며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여일하십시요 |